우민은 좋은 사람이었다.
회사에서 맡은 일을 성실하게 처리하는 직원이었고, 친구들과 어울려 다양한 운동을 즐기기도 하는 건전한 청년이었다. 자신도 교회에 열심히 다녀보고 싶다며 청혼했고, 경희는 기뻤다. 부모님께서도 똑똑하고 성실하니 이 정도면 사윗감으로 나쁘지 않다 하셨다. 결혼 후에도 알뜰하게 가계부를 정리하며 대출금을 갚아 나가는 가장이자, 아이를 앉혀 놓고 수학 문제를 함께 풀어주기도 하는 좋은 아빠였다. 경희가 몸져누운 순간에는 설거지도 하는 다정한 남편이었다. 밥풀과 기름기가 여전히 남아 있는 그릇을 재차 닦아내면서도 경희는 남편에게 고마움을 느끼곤 했다.
물론 핀잔이 오가거나 제법 큰 소리가 나는 순간도 있었다.
양말을 아무 데나 벗어둔다거나, 식사 후 그릇을 치우지 않는다거나, 교회 모임에 나가지 않으려 한다거나, 미리 차선을 변경하지 않고 새치기를 하는 등 대부분 그저 반복되는 사소한 일들에 관한 다툼이었다. 어디 그런 다툼을 벌이지 않는 부부가 세상에 있기나 하겠는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그래야만 하는 일들이었다.
하지만 어느새, 우민은 이해하지 못할 사람이 되어 있었다.
조깅을 하러 나갈 때도 멀끔하게 차려입고, 지갑이나 휴대폰 없이 외출을 하고도 바나나를 사 오는가 하면, 사라진 라벤더 오일에 대해 묻는 경희에 대해 사람들이 수백 년간 천동설을 믿었었다며 자신이 틀렸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좀 생각해 보라고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다. 뿐만 아니라 결혼할 때 사람의 됨됨이를 이미 보지 않았느냐고 책상을 내리치며 경희를 다그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결혼 이래 처음으로, 성실하고 묵묵한 모습으로 설거지를 했다.
경희가 처음으로 우민을 ‘의심’하기 시작하던 바로 그 시기에, 실은 야한 동영상을 보며 마음의 간음을 저지른 일이 있고, 이에 대해 책임감을 느낀다는 알아듣지 못할 말들도 했다.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우민의 말은, 내가 만나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당신뿐이야,라는 말이었다.
이상해진 것은 경희도 마찬가지였다. 자꾸만 눈물이 났고, 주위 사람들이 의심스러웠다.
사무실에 어느 날 갑자기 진동하는 라벤더 오일 향기에 동료와 내연녀의 체모를 상상했고, 경희와 우민이 꾸린 모범적인 가정을 보고 자신도 결혼관이 달라졌다는 교회 동생의 정체를 의심하는가 하면, 어머니 요새 별일 없으시죠, 불쑥 연락해 온 아이의 교회 선생님도 필시 한통속일 것이라 확신했다. 피해망상에 사로잡힌 사람처럼 보인다며, 자꾸 이 사람 저 사람 의심하지 말라고 직언을 아끼지 않는 전도사에 대해서도, 경희는 고통을 느꼈다.
뿐만이 아니었다.
모든 일이 당신의 의심으로부터 비롯되었잖아,라는 우민의 말에 폭력을 휘두르는가 하면, 밝게 웃으며 다가와 아이를 껴안는 교회 선생님을 경희는 세차게 밀쳐내기도 했다.
여자가 정작 중요한 걸 두고 갔던데,라고 말하지 않았더라면,
머리카락을 발견하지 않았더라면,
전도사에게 침 뱉는 소리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더라면,
침 뱉는 소리를 듣지 못했더라면,
우민을 소개받지 않았더라면,
신앙심이 깃들지 않았더라면,
교회에 다니지 않았더라면,
교회에 다니는 선배를 좋아하게 되지 않았더라면,...
그랬다면 경희는 이상해지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