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의 상처는 점차 아물었지만, 경희의 마음은 좀처럼 아물지 않았다. 경희가 가장 참을 수 없는 지점은, 일상이 망가진 자신과 달리 우민은 너무도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경희에게 아이의 교육에 대해 질문하고, 가요를 흥얼거리거나 아이와 장난을 치는, 그 모든 모습이 경희의 숨통을 옥죄었다.
하루는 우민이 아이와 함께 영어 회화 연습을 하고 있었다.
‘You have mistaken me. You have mistaken me. (네가 나를 오해한 거야.)’
하루 종일 피곤하지만 행복하고 보람차게 일하고 돌아와 고요히 하루를 마무리하고 싶었던 경희의 소망은, 우민의 말을 듣는 순간 물거품이 되었다. 가까스로 잠잠해졌던 위장 통증이 다시 시작되었다.
다시 한번, 잘못한 사람은 없고, 고통받는 사람만 남았다.
뻔뻔함이 불안의 다른 모습일 수 있다는 것을 경희는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안다는 것이 괴로움을 덜어주지는 못했다.
“경희야, 그거 가스라이팅이야.”
사정을 전해 들은 친구가 대번에 말했다. 가정을 위해 기도해 주겠다던, 부부 상담을 적극 권하던 이였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어떤 행위가 생각지 못한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사실에 경희는 속으로 놀랐다.
경희는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이 우민을 용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옹졸함과 편협함 때문이 아니었다는 것을. 새로 개 놓은 빨래 위에 체모가 흩뿌려져 있는 것은 경희의 착각도, 우연의 일치도 아니었다는 것을. 스스로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의심하게 만들고, 의구심으로 인해 자신을 더욱 괴롭게 만드는 행위가, 바로 가스라이팅이라는 것을.
함께 속해 있던 교회 단톡방에 우민이 자녀의 대학 입시를 위한 책을 추천하는 것을 보고, 경희는 조용히 피를 흘렸다. 비명을 지르는 대신, 입술을 깨물며 단톡방 나가기 버튼을 눌렀다.
영화 <밀양>에서 열렬한 기독교 신자가 된 유괴범은 신애에게 말한다. 자신은 이미 용서받았다고, 마음의 평화를 이미 얻었다고... 용서란 무엇일까, 경희는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같은 영어 회화 앱을 깔아 “You’re gaslighting me.(당신은 나를 가스라이팅 하고 있어.)”라고 연습이라도 하여 경각심을 일깨워 주어야 하나, 생각하며 경희는 쓴웃음을 지었다.
손가락의 상처가 완전히 아물었을 때쯤, 경희의 미소도 함께 아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