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는 사람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지훈을 데리고 짜장면을 먹으러 갔을 때의 일이다. 계산대 앞에서 한참 동안 가방을 뒤졌지만 지갑을 찾을 수 없었던 경희는 자신의 테이블에서 서빙하던 점원을 의심했다.
‘제가 지갑을 분명히 여기 테이블 위에 뒀단 말이에요. 그리고 이 점원 분께서 계속 저희 주위를 왔다 갔다 하셨고요.’
CCTV를 확인하고도 성에 차지 않아 경희는 식당의 매니저까지 불러다가 점원에 대해 따졌다. 경희가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지훈은 저 멀리 떨어져 있었다. 경희는 마지못해 휴대전화를 이용하여 계좌 이체를 한 뒤 집으로 향했다. 집에 오는 내내 지훈은 저만치 떨어져서 먼저 걸었다. 그리고 집에 도착하여 현관에 놓여 있는 지갑을 발견했다. 음식점에 전화해서 사과하려 하는 경희에게 지훈은 소리쳤다.
‘엄마, 제발 그만 좀 하세요. 부끄럽다고요.’
지훈의 눈빛에 서린 염오감을, 경희는 똑똑히 기억했다. 교회에서 본 그 눈빛이었다.
‘내 아이에게서 떨어지세요.’
경희는 교회 선생님에게서 아이를 세차게 떼어내며 말했다. 두 팔 벌린 채 다가와 지훈을 반갑게 안는 그 모습은 마치 경희에게서 아이를 빼앗아 가려는 몸짓처럼 느껴졌고, 경희는 교회 선생님의 몸짓을 견딜 수 없었다.
지훈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한 얼굴로 경희의 손을 뿌리쳤다.
‘엄마가 가장 괴로운 시기에 갑자기 전화해서 잘 지내는지 안부를 물은 수상한 사람 중의 하나였어. 정말로 호기심이 가득한 듯한 음성이었단 말이야. 방금도 널 엄마로부터 빼앗아 가려는 것처럼 느껴졌어. 너만은 빼앗길 수 없어.’
‘아닐 수도 있잖아요.’
한마디 말을 남긴 후 지훈은 어떠한 말도 눈빛도 보내지 않았다.
경희는 사람들을 믿을 수 없었고, 지훈은 사람들을 믿지 못하는 경희를 믿을 수 없었다. 사실 관계를 떠나 경희는 사람들을 의심하고 있는 병적인 상태였다. 그리고 지훈에게 부끄러운 엄마의 모습이었다.
‘... 당황스럽게 해서 미안해. 정말 미안해.’
경희는 눈물을 흘리며 사과했다.
짜장면집에서 한 차례 더 지훈의 눈빛을 본 후 경희는 다시는 사람들을 의심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요즘 어떻게 지내냐고 연락해오는 사람들을 말없이 하나씩 차단했다.
그런가 하면 경희는 아주 작은 것에도 지나치게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이를테면 땅콩버터에 대해 그랬다. 땅콩버터가 묻은 숟가락을 포함하여 여자의 흔적을 경희가 발견한 지 며칠이 지나 우민은 보란 듯 땅콩버터를 사 왔다. 어느새 비어버린 통에 갈 지 자로 새겨진 땅콩버터의 흔적을 보는 것이, 경희는 괴로웠다. 경희는 땅콩버터 통을 만지지 않았다. 우민도 지훈도 빈 땅콩버터 통을 치우지 않았다. 경희는 계속해서 땅콩버터 통을 바라보아야 했고, 계속해서 피해 다녀야 했다.
예민한 모습은 화장실을 가는 순간에도 이어졌다. 경희는 직장에서 화장실에 들어갈 때마다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화장실 바닥의 머리카락을 마주했다. 첫 번째 칸에도, 두 번째 칸에도, 세 번째 칸에도 늘 머리카락은 떨어져 있었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머리카락이며 체모를 발견할 때마다 경희는 그날을 떠올렸다. 여자가 다녀가기 이전에도 화장실 바닥에는 머리카락이 늘 있었던가 하는 질문은 지훈은커녕 그 누구에게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우민이 칫솔질을 끝낸 후 침 뱉는 소리. 침 뱉는 소리…….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기 위해, 아니 적어도 살아갈 수 있기 위해 경희에게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