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_시작한 일들과 모를 일들

by 눈물과 미소



헤어지자는 말을 할 때마다 우민은 공감 못해서 미안했다는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더러는 소리를 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은 경희를 더욱 허탈하게 만들 뿐이었다.

자기기만과 위선을, 가정을 지키는 길이라고 우민은 굳게 믿고 있는 듯했다. 그 말들이 경희의 정신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생각지도 못한 채.

살기 위해, 경희는 몇 가지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경희가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은 편지 쓰기였다.


지훈 아빠에게,

가정을 지킬 생각이 있었다면 그때 코스트코에 갔어야 했어. 크리스마스날 아침 콧노래를 부르는 대신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해야 했고, 모든 게 의심에서 비롯되었다는 말 따위는 하지 말았어야 해. 게다가 그런 글로 독자를 모을 수나 있겠냐는 말은 어느 누구에게도 해서는 안 되는 말이야. 나와의 관계에서 당신은 형편없는 사람이 되었지.

물론, 그것이 당신의 존재 자체가 낙제점이라는 소리는 아니야. 지훈이에게 여전히 좋은 아빠이고, 나에게도 좋은 남편인 시절이 있었으니까, 그 기억으로 감사하게 생각해. 좋은 사람 만나 나에게서는 받지 못한 존중을 받으며 생활할 수 있기를 바라.

그러니 이젠 제발 날 좀 놓아줘.

나, 살고 싶어.

경희


다음으로 경희는 가계부를 쓰기 시작했다. 월급을 모아 언젠가 아담한 집을 한 칸 얻으리라 다짐했다. 지훈이와 함께 살게 된다면 방이 두 개는 있어야 할 것이었다. 만일 지훈이 아빠와 살기를 희망한다면, 그래도 지훈을 위한 방을 마련해 둘 것이었다. 경희의 마음에서 지훈의 방이 사라질 일은 없을 테니까.

또한 경희는 달리기를 시작했다. 퇴근 후 설거지와 청소를 마친 후 지훈과 보드게임을 할 수 있으려면 체력을 길러야만 했다. 오늘은 지훈과 함께 산책로를 달렸다.


그리고 경희는 문화센터에 등록했다. 글쓰기도, 그림도, 서예도, 배우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았다. 일단은 글쓰기를 배워보기로 했다. 한강이나 J.K. 롤링이 되지는 못할지라도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내는 한편 독자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싶었다.


경희는 같은 아픔을 겪어본 사람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아닐지도 모른다. 오늘의 결정을 후회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아닐지도 모른다. 지훈에게 원망을 들을지도 모른다. 이해받을 날도 올지 모른다. 아닐지도 모른다. 계속 불행할지도 모른다. 아닐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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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어머니와 딸’을 읽어주시고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나은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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