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번이고 주저하면서 읽었다.
어쩌면 역사의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나는 당시에
군에 끌려 갔다.
대한민국의 남자들이 가는 것처럼
지원도 아니고 나이가 차서 간 것이 아니다.
강제 입대였다.
소위 데모를 한 학생들을
최전방으로 보내는 일종의 괘씸죄 입대였다.
나는 그래서 10.26부터 전두환정권이 들어서는 과정을
군대에 있었기 때문에
당시에는 정부 발표만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제대하고 나서 독일 기자가 취재한 참혹한 영상을 보고
며칠을 끙끙 앓았었다.
아니 어떻게 대한민국에서 이런 일이!!
그리고 벌써 40여년이 지나서
'한강'이라는 작가가 쓴 '소년이 온다'을 읽게 되었다.
사실 엄청나게 머뭇거렸다.
왜냐하면 당시의 참혹한 영상을
당국 몰래 많은 대학생들이 봤기 때문이었다.
과거사 진상 규명을 한다고 했지만
법적인 판결만 있었고
당시의 일을 겪은 사람들의 심리적 치유나
무참하게 죽은 사람들에 대한 피해보상과
국가의 참회는 매우 수준이 낮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독일은 1,2차 세계 대전으로 피해 입은 인접 국가들에게
지금까지도 속죄하는 진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것은 동일민족의 권력집단이
양민을 학살한 사건인데
전두환은 죽을 때까지 사죄하지 않았다.
사실 이책을 주문하고 2,3일 동안 책을 들지 못했다.
그 비참하고 무도한 참상을 소재로 한 소설인데
다시 그 80년으로 돌아가기 싫었기 때문이다.
싫다기 보다는 두려웠다.
어떻게 그 무지막지한 사건속으로 들어갈 수 있겠는가?
망설이다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품이기에
안 읽을 수 없었다.
처음엔 한장 한장 넘기기가 만만치 않았다.
참으로 읽기 어려운 책이었다.
내용이 어려워서 읽기 어려운 게 아니라
과거의 그 트라우마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괴로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책을 들고 어렵게 시작했지만
한강작가 특유의 묘사와 구성 속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더디게 더디게 읽었다.
어렵게 어렵게 읽었다.
당시의 청춘이었던 나의 젊은 시절이 오버랩되면서
더더욱 안타까운 장면들이 많았다.
'광주'에 대한 그동안의 영화도 많이 나왔지만
차원이 달랐다.
그리고 노벨문학상을 수상함으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일어난 특수한 사건이
인류사의 보편적 가치로 승화되는 계기가 되리라 믿는다.
문학의 힘은
특수한 사건과 가치를
객관화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한강작가의 필력은 정말 대단했다.
물론 그러니까 노벨문학상을 받았지만!
그녀의 책 두권을 더 구입했다.
'채식주의자'와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으려고 한다.
내가 한강작가의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묘사가 정말 특이한데 공감이 갔고
사건 전개가 어렵지 않지만
고도의 계산된 구성으로 독자들을 끌어들인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노벨문학상이 발표되었을 때
한강은 흥분하지 않고
세계가 전쟁으로 고통받고 있는데
어떻게 축제를 즐길 수 있느냐고 말했다.
처음엔 별나다라고 생각했는데
작품을 읽어보고 난 후에는
그의 말에 공감이 갔다.
한강과 동시대인이라는 사실이 행복하고 자랑스럽다.
중1때 시인을 꿈꾸면서 신춘문예에 도전한 사람이지만
한강작가가 이룬 어마어마한 성적에 박수를 보낼 뿐이다.
정말 대단한 괴물 작가를 대한민국이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