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을 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간혹 묻는 질문이 있다.
‘힘들게 산을 왜 오르세요?’ 가장 확실한 답은 무얼까?
내 생각엔 ‘올라가 보면 압니다.’라고 대답해 줄 것 같다.
서귀포의 습하고 더운 날씨에 힘들게 왜 올레길을 걸을까?
나 또한 걸어보니 알게 되었다.
식당업 15년 차. 모든 직업이 주는 스트레스가 있겠지만, 식당을 운영하는 것도 신경 쓸게 참 많은 일이다.
더욱이 코로나가 터지고 일 년 반 동안 한 마음고생은 겪어보지 않고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다. 오죽하면 15년 동안 해 온 내 가게를 폐업했을까?
작년 연말에도 이번 겨울만 지나면 끝나겠지 하고 생각했지만, 일 년이 지난 지금 백신이 나왔지만, 계속되는 변이 탓으로 언제 끝날지 모르는 힘든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제주에서 시작한 한 달 살기 중에 집과 일자리를 구하면서 마음의 여유가 생기지 않아 서울에서 지고 온 마음의 응어리와 복잡한 머릿속은 여전했다.
그런 고민을 눈치채신 제주의 지인 분께서 서두르지 말고, 서귀포의 여름을 느껴보라며, 올레길 코스를 권해 주셨다.
가끔 여행 온 제주에서도 짧은 일정 핑계로 올레길은 걸어본 적이 없었다.
제주 올레코스. 1코스부터 21코스까지 총 거리 425km로 26개 코스를 완주한다면 제주도의 바깥 테두리 지역을 한 바퀴 돌 수 있게 만들어진 길이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곳에서 나는 우선 나를 추슬러야만 했다.
마음은 조급 하지만, 한 달 뒤엔 서울 집 이사도 시켜야 하고, 엄마와 콩이도 보살펴야 한다.
식구들이 오기 전까지 최대한 내 지친 몸과 마음도 치료가 필요했다.
그렇게 반산반의 한 생각으로 생수 1통을 들고 올레길 센터를 시작으로 7코스를 걸어 보았다.
처음 걸어보는 서귀포의 아름다운 길을 따라가다 보니 휴대폰을 들어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다.
가이드도 없이 그냥 길을 따라 묶어놓은 파랑, 주황색 리본을 따라 (파랑은 바다, 주황은 감귤을 상징) 걷다 보면 차를 타고 가면 볼 수 없었던 제주의 참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천천히 지나간다.
걷기 시작한 지 3시간이 지나자 사진을 찍을 힘도 없고, 보이는 건 푸른 바다와 하늘, 돌길과 흙길 만이 보인다.
너무 준비 없이 출발한 내 불찰이다. 물은 금세 다 마셔 버렸고, 서귀포의 강한 햇살을 가리기엔 턱없이 작은 모자와 면티는 금방 땀에 젖어 버렸다. 가볍기만 한 운동화는 돌길을 걸을 때마다 중심을 잡지 못하고 획 돌아가기 일수였다.
외돌개 해안 길을 지나고, 강정 해안도로를 걸을 때는 그만 택시를 불러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4시간이 지나자 머릿속이 맑아지고. 들리는 건 바람소리와 파도소리뿐. 내 다리는 고통 없이 기계처럼 움직인다. 다시 주위의 풍경이 보이고, 아무런 잡념 없이 오로지 걷는 것에만 집중하게 된다.
가끔 지나치는 반가운 올레꾼들이 수고하라며 파이팅을 외쳐준다.
지금의 나는 올레길을 걷는 올레꾼 일뿐, 망한 자영업자도 혼자 제주에 내려와 있는 중년의 남자도 일자리를 구해야 하고, 빈 손으로 다시 시작해 남은 삶을 살아야 하는 걱정 많은 이도 아니다.
7코스 종착 지점에서 미리 도착한 올레꾼 들과 간단히 인사를 하니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은 그들이 굉장히 친숙해 보인다. 이 사람들을 다른 코스에서 또 만날 수 있겠지.
숙소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내일은 어느 코스를 걸어 볼까를 생각했다.
‘왜 힘들게 올레길을 걷냐고?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힘닿는데 까지 걸어봐. 그럼 알 거야’
나는 그렇게 무언가에 홀린 듯 올레길의 매력애 빠져 성산 일출봉이 보이는 1코스부터 중문의 아름다운 풍경을 따라 걸을 수 있는 9코스까지 시간이 허락되는 날이면 작은 배냥과 낡은 등산화를 신고 올레길을 미친 듯이 걸었다.
지치고 힘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권해드리고 싶다.
‘올레길을 아시나요? 아직 걸어보지 않으셨다면 일단 한번 걸어 보세요. 장담하건대, 처음 걸어보는 사람들은 있어도 한 번만 걷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나는 그렇게 낯선 제주에서 만난 올레길에 내 마음의 짐들을 조금씩 버리고 올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