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가는 길 2

by 나르는꿈

명희는 잠결에 휴대폰 진동에 눈을 떴다.

세 시다. 전화번호도 낯설다. 빨리 끄려는 생각으로 휴대폰을 들었다.

아버지가 계신 요양병원이었다.

서둘러 남편을 깨워 나설 채비를 하며 큰언니에게 전화를 해보았다. 병원 측 말대로 전화기가 꺼져있다는 안내소리만 들렸다.

가는 차 안에서 작은언니와 동생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저녁까지도 아버지는 아무 이상 없이 평온했다고 했다.

저녁식사를 하고 졸리다고 일찍 잠이 드셨는데 악몽을 꾸시는지 소리를 지르며 '윤이야'를 목매게 부르셨단다. 한참을 꿈속을 헤매시는 듯 허우적거리시다가 잠드신줄 알았는데 그대로 깨지 않으셨다고 했다. 워낙 조용히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누구도 짐작을 못하여 미리 연락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했다. 그 시각이 밤 세시였다.

보호자 연락처에 등록된 큰언니에게 전화를 했지만 연결이 안 되어 다른 보호자 연락처를 찾느라 조금 늦었다고도 했다.

다른 도시에 살고 있는 큰언니는 어차피 이 시간에 함께 하지 못할 것이었다.

언니는 왜 이 중요한 때에 전화기가 꺼져 있는 거냐며

둘째 언니가 낮은 소리로 원망 아닌 원망을 했지만 명희는 흘러들었다.

칠 년 전 엄마도 명희의 집에 잠시 머무시다가 돌아가셨다. 지금 아버지의 부고도 명희가 제일 먼저 연락을 받았다.

장녀도 장남도 아닌 셋 째인 자기가 부모님의 임종을 선택받은 자식인 거 같은 뿌듯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휴대폰 배터리가 거의 없음을 알았지만 전화가 급하게 올곳도 없고, 자다가 전화 걸 일도 없다. 그냥 무시했었다.

이른 아침 남편의 휴대폰으로 알게 된 아버지의 죽음.

왜 전화기를 꺼놓아서 노인네 가는 것도 놓치냐는 막내 제부의 원망 섞인 타박을 들으며 윤이는 잠시 멍했다.

방전될 것을 알고도 충전기에 꽂지 않은 적은 그때가 처음이었고 그 이후로도 없었다.

왜, 그랬을까.

왜 하필 그 밤에 아버지는 가셨을까.

칠 년 전 엄마가 위독하다는 전화를 받고 서둘렀지만 서울과 부산의 거리는 시간이 필요했고 그 사이 엄마는

곱게 잠들어 계셨다.

당황하고 어수선한 분위기가 어느 정도 수습된 뒤였다.

아버지도 그랬다.

아버지는 큰딸 이름을 부르며 찾으셨다는데 그 딸은 연결고리를 차단시켜 놓고 자고 있었다.

설령 그 밤에 달려와 볼 수는 없을지라도 아버지의 소식을 직접 듣기라도 할 수 있었을 텐데,

정말 왜, 그랬을까,

왜 하필 그 밤에 아버지는 가셨을까.

구순의 나이에 자는 듯 가셨으니 호상이라고 애달피 우는 문상객도 없다.

구 년 가까운 시간을 요양병원에 계셨으니,

자식들도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장례절차를 밟았다.

윤이는 문상객을 맞는 자리에서 벗어난 뒷자리에서 붙박이처럼 앉아 있었다.

아버지는 마지막으로 자식들이 보고 싶었던 것일까?

그것이 궁금했다.




노인은 집 앞골목 계단에 앉아 잠시 생각에 잠긴다.

집을 떠난 지가 얼마나 되었다고 이렇게나 변했을까.

동네가 변했다. 집집마다 담들이 너무 높아졌다.

대문들도 굳게 닫혀있다.

노인의 기억 속에 대문들은 아침이면 활짝 열리고 학교 가는 아이들의 달음박질과 일터로 향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좁은 골목이 복작거렸는데 날이 밝은지가 한참이나 됐는데 대문들은 열릴 줄을 모른다.

어쩌다 낯선 얼굴들이 나와서는 사라지고 대문은 다시 굳게 닫힌다.

분명 노인의 집이 있는 동네인데 낯설다.

동네사람들 모두가 다 바뀌었다는 것일까?

앞집의 지붕을 사이에 두고 이어져 있는 샛길에서 집집마다의 아침 풍경이 훤히 보였었는데 그사이에 담이 높게 처져있다. 발을 헛디뎌 앞집 마당으로 떨어질 걱정은 없지만 너무 갑갑하다.

동네가 왜 이리 변했을까,

집집마다 담으로 단절된 동네를 보니 꿈을 꾸는 것 같다.

날이 밝아도 노인의 집에는 아무도 오지 않는다.

노인은 큰딸 집에 가자고 생각하며 일어섰다.

어쩌면 아내가 아파서 큰딸집에 있을 거야 그래서 큰애가 바빠서 전화를 못 받은걸 거야.

그런데 노인은 큰딸집을 모른다.

결혼하고 서울로 이사 가고는 가본 적이 없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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