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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길 위에 서다(3)

by 동그라미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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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길 위에 서다 (3)


3부. 보이지 않는 벽


재미로 시작했고, 내가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나를 지배하고 옭아매기 시작한다.

민우도 처음에는 호기심과 재미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게임을 그만둔다는 건 자신이 지워지는 것 같다.

게임이 아니어도 다른 것을 통해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겠다는 작은 생각의 구름이 마음에 떠올랐다.

그러나 깨달음이 곧바로 변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다음 상담 시간, 민우는 또다시 지각했다. 전날 밤 새벽 4시까지 게임을 했고, 아침에 일어나지 못했다. 상담실에 들어선 민우의 얼굴은 더욱 창백했다.

"민우야, 오늘은 좀 어땠어?"

박 상담사의 부드러운 질문에 민우는 짜증스럽게 대답했다.

"뭐가요? 똑같죠. 게임하고, 자고, 또 게임하고."

"지난주에 이야기했던 것 기억나? 어렸을 때 그림 그리던 것 말이야."

민우는 고개를 돌렸다. "그거... 별로 중요한 거 아니었어요. 그냥 애들 장난이었죠."

박 상담사는 민우의 방어기제를 알아차렸다. 변화가 두려운 것이다. 게임 속 세계는 익숙하고 안전했다. 실패해도 다시 시작할 수 있고, 노력하면 반드시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현실은? 현실에서 그림을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또 다른 실패와 마주할 가능성을 의미했다.

"그럼 이번 주는 게임이 재밌었어?"

민우는 잠시 말을 멈췄다. 사실 요즘은 게임도 예전처럼 재밌지 않았다. 레벨업을 해도, 아이템을 얻어도, 그저 공허함만 남았다. 하지만 그것을 인정하는 순간, 자신이 의지하던 마지막 보루마저 무너질 것 같았다.

"...재밌죠."

거짓말이었다. 박 상담사도 알았고, 민우 자신도 알았다.

"민우야, 네가 게임을 그만두라고 하는 게 아니야. 다만 네가 정말 원하는 게 뭔지, 진짜 민우는 어떤 모습인지 한번 찾아보자는 거야. 그게 무서운 거니?"

민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눈가가 뜨거워졌다.


그날 밤, 민우는 게임을 켰다가 껐다가를 반복했다.

로그인 버튼 위에 마우스를 올렸다가, 다시 내렸다. 머릿속에는 박 상담사의 목소리가 맴돌았다.

'네가 정말 원하는 게 뭔지.'

민우는 책상 서랍 깊숙한 곳에서 오래된 스케치북을 꺼냈다. 먼지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첫 페이지를 펼치자, 어린 시절 그렸던 서툰 그림들이 나왔다. 공룡, 로봇, 우주선. 그 시절의 민우는 무엇이든 그릴 수 있다고 믿었다.

민우는 스케치북을 덮고 다시 게임을 켰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화면 속 블랙 드래곤이 서 있는 그 자리가, 이상하게도 텅 비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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