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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길 위에 서다 (2)

by 동그라미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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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길 위에 서다 (2)



2부. 낯선 거울 앞에 서다


학교에 빠지는 날이 많아지면서 부모님을 뵙자고 한 선생님은 말했다.

"이렇게는 안 됩니다.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해요."

담임 선생님의 말에 부모님은 마침내 인정했다.

민우의 상태가 더 이상 자력으로 회복될 수 없다는 것을. 어머니는 밤새 울었다. "내가 뭘 잘못한 걸까요? “

처음에는 민우도 완강히 거절한 채 더 방에서 자기만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마음으로는 겁이 났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아 자기를 인정해 주는 게임에만 몰입했다.

블랙 드래곤으로 레벨이 올라가도 마음이 채워지기는커녕 게임을 끝내고 나면 더 공허한 마음이 들었다.


부모님 걱정과 염려를 넘어 지치기 시작했고, 부모로서 아들을 돕는 것이 한계에 이른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아들을 포기할 수 없기에 청소년 중독 예방 센터를 통해 청소년 상담 전문가를 하였다.

민우의 상태가 더 이상 자력으로 회복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청소년 상담 전문가인 박연화 선생님을 찾아갔다.

민우도 처음에는 완강히 거절했으나 사실 자신도 자기 상태에 대해 말 못 할 불안이 있었기에 마지못해 상담에 응했다.

민우는 끌려가다시피 상담실에 앉았다. 억지로 온 티를 내기 위해 고개를 숙인 채,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저, 할 말 없어요."

박연화 상담사는 여느 어른들처럼 게임의 폐해를 설교하거나 '정신 차리라'라고 다그치지 않았다. 그녀는 고요한 목소리로 물었다.

"민우야, 게임 속에서 너는 어떤 존재니? 사람들이 너를 어떻게 불러주니? “

민우는 어른이 자기의 게임 아바타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물어봐 주는 것이 신기했다.

학교나 성적 문제가 아닌 게임 속 자신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묻다니.

민우는 잠시 망설였다. 블랙 드래곤. 그 단어를 내뱉는 순간, 그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강하고, 필요한 존재요. 제 전략대로 다 움직여요. 저 없으면 안 돼요."

박 상담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그럼 현실의 민우는 어떨까? 현실의 민우에게 강하고, 필요하며, 너 없으면 안 되는 일이 있다면?"

민우는 대답하지 못했다. 눈앞이 막막해졌다. 현실의 자신은 무능하고, 혼란스럽고, 부모님께는 실망스러운 존재였다.


박 상담사는 말티푸를 길들이듯, 조금씩, 천천히, 민우의 내면에 다가갔다.

"민우가 게임에서 얻는 건 통제감과 유능감이야. 현실에서 그 느낌을 얻지 못해서 게임 속 아바타에 의지하고 있는 거지. 혹시 게임 말고, 네가 진짜 너 자신으로도 인정받고, 잘한다고 느껴봤던 일이 있을까?"

민우는 순간 멈칫했다. 아주 어릴 적, 스케치북에 푹 빠져 몇 시간이고 끄적이던 기억이, 그리고 어머니가 친구들에게 "우리 민우 그림 잘 그린다"며 자랑하던 목소리가 희미하게 떠올랐다.

그러나 부모님이 '미술은 취미로만 하라'라고 했을 때 접었던 꿈이었다.

그날, 민우는 낯선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이 게임 속 '블랙 드래곤'이 아닌 또 다른 '민우'를 스스로 외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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