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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도전, 소설
17화
보이스 힐링 (4)
걱정 말아요 그대
by
동그라미 원
Nov 19. 2025
보이스 힐링 (4)
걱정 말아요. 그대
같은 시각, 미희의 원룸.
미희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눈앞에는 수면제 한 통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물 한 컵.
미희의 눈은 충혈되어 있었다. 이미 몇 시간 동안 울었기 때문이었다.
3개월 전, 미희는 보이스피싱 사기에 걸렸다.
전화를 받았을 때, 상대방은 경찰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미희 씨, 당신 명의로 범죄 계좌가 개설되었습니다. 지금 당장 조치하지 않으면 당신이 피의자로 체포될 수 있습니다."
"네? 무슨 말씀이세요?"
"당신 통장에 있는 돈을 안전 계좌로 옮겨야 합니다. 지금 당장요."
미희는 겁이 났다. 범죄자가 된다니. 체포된다니.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제가 알려드리는 계좌로 송금하세요. 빨리요."
미희는 그 말을 믿었다. 그리고 자신의 통장에 있던 3천만 원을 모두 송금했다.
사기라는 것을 깨달은 건 그다음 날이었다.
경찰서에 직접 전화해서 확인했다.
"미희 씨, 그건 보이스피싱 사기입니다. 경찰이 절대 그런 식으로 연락하지 않아요."
미희는 그 자리에서 무너졌다.
3천만 원. 자신이 지금까지 모은 돈.
모두 사라졌다.
미희는 경찰에 신고했지만, 돈을 돌려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이미 해외 계좌로 빠져나갔습니다. 추적이 어렵습니다."
미희는 절망했다.
'내가 왜 이렇게 바보 같았을까.'
수치심과 죄책감이 미희를 짓눌렀다.
미희는 대학 졸업 후 많은 곳에 이력서를 냈지만 취직이 되지 않다가, 중소기업에 관리 업무로 일을 하게 되었는데 적성에 맞지 않아 힘들어했다.
결국 미희는 3개월 전에 직장을 그만두고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준비하며 돈을 아껴 쓰고 있었다.
얼마 전 친구 자영이 전세 사기를 당했을 때 미희는 마음으로 친구가 어리석다고 생각했었다.
막상 자영이 가장 친한 친구라고 생각했지만, 친구가 어려움을 당했을 때 제대로 도움을 주지 못했다.
아니, 자신도 다시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남은 돈을 아껴야 한다고 생각해서 어떤 면에선 외면했다.
그러나 자신이 이렇게 사기를 당하고 보니 가장 먼저 자영이 떠올랐다.
자영이라면 자기 처지를 가장 잘 이해해 줄 것 같았지만 자신의 상황을 얘기할 수 없었다.
‘친구가 그런 어려움을 당했을 때 아무 도움도 주지 못했는데...’
더 이상 자영을 볼 면목이 없었다.
'죽는 게 나아.'
미희는 마지막으로 자영에게 문자를 보냈다.
'자영아, 미안해. 안녕.'
그리고 수면제 통을 열었다.
바로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자영에게서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지 않았다. 받을 수 없었다.
다시 전화가 왔다. 또 받지 않았다.
자영은 미희에게 급하게 문자를 보냈다.
'미희야, 무슨 일이야? 전화 좀 받아!‘
머뭇거리며 전화를 받지 못하고, 자영에게 전화 걸 용기도 없을 때 다시 문자가 왔다.
그 문자에는 유튜브 링크와 제목이 적혀 있었다.
‘걱정 말아요. 그대’ 자신이 즐겨 듣던 이적의 노래였다.
미희는 마지막으로 그 음악이 듣고 싶어졌다. 링크를 누르니 음악이 흘러나왔다.
‘그대여 아무 걱정 하지 말아요 우리 함께 노래합시다
그대 아픈 기억들 모두 그대여 그대 가슴에 깊이 묻어 버리고’
노래를 듣는데 미희 눈에는 그냥 눈물이 흘렀다.
그 눈물과 함께 다 포기하고 싶다는 마음도 씻겨나가는 것 같았다.
미희는 핸드폰을 들어 자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두 번 울리자마자, 자영이 받았다.
"미희야!"
자영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울고 있는 것 같았다.
"자영아... 미안해..."
미희의 목소리도 떨렸다.
"미희야, 괜찮아? 지금 어디야? 내가 지금 갈게!"
"자영아, 나... 나..."
미희는 말을 잇지 못하고 울기 시작했다.
"미희야, 괜찮아. 울어도 돼. 내가 여기 있어. 내가 여기 있으니까."
자영의 목소리가 미희를 감싸 안았다.
미희는 한참을 울었다. 그리고 천천히,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보이스피싱 사기에 당한 일.
3천만 원을 잃은 일. 자영이 전세 사기를 당했을 때 가졌던 마음.
"자영아, 정말 미안해. 나 때문에... 너도 힘든데... "
"미희야."
자영이 미희의 말을 끊었다.
"지금 중요한 건 네가 살아 있다는 거야. 알겠어?"
"... 응."
"미희야, 나도 전세 사기 당했을 때 죽고 싶었어. 진짜로 한강 다리까지 갔었어."
"뭐?"
미희는 놀라 눈물을 멈췄다.
"응. 근데 누군가가 나한테 노래를 보내줬어. 그 노래 덕분에 나 살았어."
자영의 목소리가 따뜻했다.
"그래서 나도 너한테 노래 보낸 거야. 미희야, 우리 함께 이겨내자. 응?"
미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화기 너머로는 보이지 않았지만, 자영은 알 수 있었다.
"응, 자영아. 고마워."
그날 밤, 자영은 미희의 집으로 달려갔다.
문을 열자, 미희가 눈이 퉁퉁 부은 채 서 있었다.
"자영아..." "미희야!"
두 사람은 서로를 꽉 껴안았다.
"자영아, 미안해. 정말 미안해."
"괜찮아, 미희야. 괜찮아."
자영은 미희의 등을 토닥였다.
"우리 함께 살자. 알겠지?"
"응..."
두 사람은 한참을 그렇게 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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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평범함을 깨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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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인생 2막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살면서 깨닫고 어려움을 극복한 마음들을 글을 통해 함께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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