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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디라이터 호 Nov 15. 2021

개미와 베짱이

나는 매일 집으로 출근한다

창문을 비집고 새어 들어오는 빛이 마루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겨울이 찾아드는 11월의 첫 자락, 아직은 온기를 다 보내지 않으려는 듯 불그스름한 누런 햇살이 집을 깊숙이 파고들며 무심히 오후를 밝히는 조용한 초겨울이다.


게으름뱅이의 하루는 제시간에 시작하는 법이 없어 새벽녘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나 싶다가 다시 침대 위로 올라 비비적거리기를 반복한다. 오롯이 나에게 허락된 이 소중한 시간을 넘치도록 만끽해야지 하다, 오늘 하루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은 채 이대로 보낼 수는 없다며 시큰거리는 마디를 마음으로 정렬한 후 등받이에 쿠션을 구겨 넣는다.

 

동화 속 베짱이는 개미와 늘 비교되며 겨울철 식량을 부지런히 쌓지 않아 굶어 죽었다고 나오지만 현실의 베짱이는 개미만큼 열심히 일하지는 않되 결코 쉬는 법은 없다. 주리지 않기 위함이기도 하고 아직은 사그라들지 못한 힘없는 불꽃을 마지막 희망에 태우며 뭐라도 그려나가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처음부터 나도 반들거리며 하루를 보내는 베짱이는 아니었다. 좋게 말하면 독립적인 좀 꼬아 말하면 생존이 필수였던 환경에서 살아가야 그리고 살아남아야 했기에 나의 태생은 원래 개미였다. 어려서는 한 줌 옆구리 살이라도 찔 세라 남들처럼 부지런히 학교를 다녔고, 커서는 노동이 더 적성에 맞았는지 도태되지 않으려 머리 가슴 배를 바지런히 움직이며 여섯 발로 뛰기도 했다. 그러나 시절의 흐름과 인생의 변화, 거기에 내면의 자아가 변곡점을 겪으며 개미는 더 이상 이전과 같이 살지는 않겠노라 신(新) 존재를 주장하며 한동안 개미인 듯 개미 아닌 개미 같은 베짱이로 살게 됐다. 뭐 말하자면, 이제는 열성 개미이고 싶어도 더는 그럴 수 없는 나이가 되기도 했고. 또 한편으로는 더 이상 개미질을 하지 않아도 먹고는 살지 않겠나, 하는 베짱이적 마인드가 삶의 파고를 넘으며 내 정체성바꾸어 주었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그 역할을 담당해야 했기에 잠시 나의 파트너에게 어물쩍 숟가락을 얹으며 늘 마음이 고단했던 열성 개미였던 나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이제 딩가딩가 노니는 베짱이가 되어 너른 들녘 대신 옹종한 집안 여기저기를 옮겨 다니며 내 울타리에 드러누워 글을 쓰며 노래를 부른다.


'딩가 딩가 딩가 딩가’

'참 신나면서도 지루하구먼.’

'근데, 소처럼 일하는 당신도 가끔 행복하긴 한 거지?’

'끄응!’

'베짱이는 한 방. 그러니 조금만 더 버텨줘!’


이런저런 잡스런 생각을 하다 허리를 받치려 새로 구매한 푹신한 쿠션을 부끄럽게는 하지 말아야지, 중얼거리며 접었던 노트북을 다시 편다. 남는 것이 시간이요, 남아도는 것 또한 시간 아니던가. 볕 좋은 여름 잔잔한 파도 위 해를 마주하고 드러누워 유유자적하는 한량처럼 집구석 여기저기를 부표하며 생각의 나래를 펼친다. 상상의 파도를 타고 시간 위를 조금 더 배회하기로 한다. 라도 하나 걸리길 바라면서.


그러다 머릿속 그물에 뭐라도 걸릴라 치면, 어이쿠 놓칠 새라 얼른 낚아 올려 나의 기밀 노트에 주섬주섬 채워 넣는다. 생각은 지나가면 그뿐 내일 다시 오리라는 보장이 없다. 한 모금 디카페인 커피로 입을 달래고 '이만하면 되었군' 건져 올린 것들을 어떻게 다듬을지 고민하다 널브러진 원래의 자리로 돌아간다.


 ‘꼭 다 잘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냐.’

 ‘근데 또 모르지, 내 운명의 클라이맥스가 어떻게 펼쳐질지.


딱히 대중이 없어 보이는 자유로운 루틴들이 그만의 룰 안에서 한바탕 끝나고 나면 하루에도 몇 번이나 할까 말까 할까 말까 죄스런 순간을 거친 마음이 가까스로 하겠노라 향방을 돌릴 때 나는 다시 노트북은 켜고 끄적거리기 시작한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따위의 글 놀림은 지양한다. 낚아 놓은 아이디어로 대략 틀을 정한 후 자판을 두드려 첫 줄을 시작하면 그만이다. 도입부 첫 문장은 원래 가야 할 방향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고리에 고리를 만들어 이야기를 연결해 준다. 그물에 줄줄이 꿰인 생선처럼 생각들도 단어를 만나 말을 물고 글을 뱉는다. 글쓰기란 이런 것이었나. 어쨌든 하루치 생산량을 채웠으니 된 일이다.


'슬슬 해가 꼬리를 내리는군.’


초겨울의 희뿌연 낮이 덩치 큰 겨울의 어둠에게 금세 자리를 내준다. 무슨 일을 할까, 게으른 낡은 베짱이도 자리를 털고 일어나 짧은 신음을 내지르며 기지개를 다.


'오늘은 이만하면 됐다구.’


별로 한 것도 없는데 눈알이 쿡쿡 쑤셔 온다. 놀리던 머리를 초집중시킨 탓인지 귀 안이 윙윙거리며 쓸데없는 소리를 낸다. 별달리 한 일도 없는데 위가 꾸륵꾸륵 신호를 보낸다. 밥시간이다.


'앗!’


나의 사랑 일개미가 집으로 돌아올 시간이다. 두 배의 일을 하느라 자라처럼 목이 구부정한 안쓰러운 그를 위해 나름의 정찬을 준비해 주어야겠다.


저녁을 먹고 다시 노트북을 켤지 말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하루치 남은 영감이 나를 더 끌어줄지 아닐지는 그냥 남은 하루에게 맡길 일이다. 그러니 한량없이 한가한 베짱이처럼 노래나 부르자. 휘휘- 집 안이나 돌아다니며 생각의 그물이나 던져 놓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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