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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또집 Oct 02. 2024

엄마- 얼른 가자 이미 늦어써

어제와 내일과 오늘

아이가 폐렴으로 입원해 있던 동안

병실이 영 갑갑했던 아이는

자는 시간을 제외하곤

"엄마 밖에 나가자-"라고 하곤 했다.



하루는 24시간.

입원 기간은 5박 6일.

그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입원 기간을 보내기 위해

병원 주위를 빙글빙글,

많이도 돌았다.



목적지도 없이 하염없이 걸었던

가을이지만 햇빛이 따가웠던

그 길이



아이가 입고 있던 병원복과는 상반되게도

나른함을 넘어

되려 평화롭기까지 했다.



아이와 큰 대화를 하지도 않았다.

그저 아이가 탄 휠체어를 밀어주며

같은 곳을 빙글빙글

병실이 아니라는 것에 만족하며 걸었다.



그렇게 원을 그리며 돌다가

한 번은 잠시 핸드폰을 들여다보느라 멈춰 섰다.



아이는 잠시 기다려주는가 싶더니 말한다.

"엄마- 얼른 가자 이미 늦어써-"



푸하!

나른하고 지루한 강강술래 중인 줄 알았더니

아이는 나름의 바쁜 스케줄이 있었나 보다.



"풀이 지금 어디 가는데? 이미 늦었어?"

"응 이미 느져짜나- 어은(얼른) 가쟈-"



어딜 가고 있는지는 자신도 모를 테니

목적지는 대충 얼버무린 채

엄마를 다시 닦달한다.



어쨌든 바쁘시다니까,

바쁜 아들을 둔 엄마는

다시 부지런히 다리를 움직여본다.



걸으면서 자꾸만 웃음이 새어 나온다.

'이미'라는 말은 어디서 배웠을까.



'방금', '이미', '지금', '내일'...

아이가 시간 개념이 들어간 단어를 내뱉을 때면

그렇게 신기하고 귀여울 수가 없다.



"엄마 방금 빠방이 빵- 해찌?"

"풀이 이미 화나써!"

"엄마 지굼, 풀이가 하는 말, 안 들려-?"

"코 자고- 내일 포도 머구꺼야-"



이 작은 아이가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고

다가올 미래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

퍽 귀엽고 기특하다.



어제를 돌아보니 반짝였기를.

내일을 바라보니 환하기를.



그리고 그런 어제와 내일을 위해

오늘을 열심히 울고 웃으며 커가기를.



오늘 아이와 보내는 이 하루는

특별할 것 없이 그저 같은 곳을 맴도는 하루지만

그래도 이 하루가 아이에게 어떤 날인지 물어본다.



"풀아, 엄마랑 이렇게 산책하는 게 좋아?"

"웅- 조아-"

"걷는 게 좋아, 살랑살랑 바람이 좋아, 걸으면서 이것저것 보는 게 좋아?"

"엄마랑 보는 게 조아-"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이

사실은 마냥 좋기만 하지는 않다.

힘에 부치는 순간이 부지기수.



하지만 돌아보면 참 따뜻하고 소중한 시간이다.

돌아봐야 비로소 보이는 특별함이 있다.



언젠가는 내 품을 떠나 자신의 세상을 살아갈 아이.

그 아이가 아직은 나와 있는 시간을 좋아하는 이때.



이때를 놓치지 말고 잘 모아둬야지,

오늘도 기록하며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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