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로부터 보는 나
부모는 아이의 거울이라 했던가.
말문이 터지기 시작한 아이는
자신의 부모의 모습을 잔뜩 묻혀
들었던 말을 그대로 내어놓곤 한다.
햇빛이 창으로 쨍하게 들어오던 어느 날에
아이는 나를 불렀다.
"엄마- 이루 와서 풀이 도와죠."
무언가를 만드는 중이었던 듯
처음 보는 모양새지만 나름의 규칙으로 주욱 늘어선 나무블록이 눈에 들어온다.
"엄마 늑대 만들어죠."
늑대를 본 적도 없는 아이지만 늑대를 만들어달란다.
늑대를 어떻게 만들까..
고민하던 찰나를 기다리기엔
아이의 마음은 조급하기만 하다.
"엄마 얼른 늑대 만들어죠-!!"
재촉하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조바심을 입은 손이 먼저 불쑥 나온다.
기둥처럼 세워둔 두 개의 나무블록 위에
또 하나의 나무블록을 바로 눕히고 싶은 듯,
작은 손안에 든 나무블록 하나가
기웃거리다 그만 세워진 블록을 쓰러트리고 말았다.
으앙-
제 뜻대로 되지 않은 마음이
눈물로 소리로 와르르 쏟아져 내린다.
이제야 늑대가 무엇인가 알아차린 엄마가
서둘러 그 눈물을 막아보려
아이가 만들고 싶었던 다리 모양을 만든다.
그제야 만족했는지
입술이 둥글게 곡선을 그리더니
고새 엄마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된다.
"엄마! 오요케(이렇게) 하는 고야-"
"한 번 해바!"
하 참,
좀 전까지 안 된다고 울던 게 누군데?!
그렇지만 이렇게나 귀여운 선생님이라니
최고의 선생님이 아닌가,
고분고분 선생님의 말씀을 따라본다.
"응- 이렇게 하면 돼?"
"고로-치. 그로케 하는 고지."
"잘해-써. 다시 한 본 해바."
하하하!
정말이지,
아이 앞에서는 냉수도 마시지 말라고 했던가.
엄마 아빠가 자신에게 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던 모습도
그대로 따라 하는 아이를 보며 짓던 미소도
아이가 해내는 것이 늘어남에 놀라워하던 감탄도
자랑스러움을 전해주던 우리의 말도
아이는 모두 마음에 담고 있다가
그대로 받은 이에게 다시 내어준다.
심지어는 말에 묻어나는 각자의 음률도
그대로 담았다.
이 날은 운이 좋았다.
아이가 내어 놓은 내 모습이
아이를 자랑스러워하던 사랑을 담은 모습이었으니까.
아이가 누군가의 미운 모습을 담아낸다면
특히나 하루의 고단함에 날카롭게 날이 선 엄마의 모습이라도 담아낸다면
그날은 아이를 재우고 한참을 자책을 했을 것인데 말이다.
다시 한번 새겨본다.
부모는 아이의 거울.
베베 꼬인 것 하나 없는 저 투명한 마음에
예쁜 것만 담기면 좋을 텐데
엄마도 사람인지라 쉽지가 않다.
그래도 하나만은 약속한다.
엄마가 엄마라서
엄마가 어른이라서
잘못한 줄 알면서도
아이에게 한 잘못을 슬쩍 넘겨버리지만은 않겠다고.
나는 언제나 사랑이 가득한
고운 엄마이지는 못하지만
그런 엄마이지 않았던 순간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미안하다고,
이건 잘못된 거였다고
꼭 알려주겠다고 다짐한다.
이기적이게도
엄마의 잘못을 알려주면
잘못된 건 담지 않고 잘된 것만 담는
둥그스름한 하얀 백자 같은 아이가 되어 주었으면 하며
오늘도 아이를 재운 뒤
나를 담아내고 남편을 담아내던
아이의 말들을 곱씹으며 빙긋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