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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또집 Oct 28. 2024

날씨가 추워져서,

계절로 느끼는 너의 자라남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나 공감할

우당탕탕 분주한 아침 등원 준비 시간의 공기.



갑자기 추워진 날씨 때문일까,

뿌옇게 안개가 껴버린 어느 아침

등원 준비를 대충 마쳐놓고 남편이 빨래를 정리하고 있었다.



손이 바쁜 아빠에게 동생의 얇은 거즈 이불 하나를 가져간 아이는 말한다.

"오늘, 날씨가 추어져써. 이거 덮고 가꺼야."



날씨가 서늘해지면서

이불을 덮지 않는 아이가 자는 모습을 보면 아무래도 영 추워 보여

편치 않은 엄마 맘에

몇 차례 이불을 가슴까지 올려 치마처럼 둘러줬더니만



망토처럼 둘러낸 이불이 퍽 마음에 들었는지

간혹 이렇게 이불을 들고 와서는 좋아하는 인형과 함께 묶어달라고 하곤 한다.



아이의 부탁이 어려운 일도 아니지만서도 이렇게 바쁠 때면 잠시 아이를 세워두기 마련인데

저 작고 통통한 입술에서 나온 귀여운 날씨 소식에

바삐 움직이던 손을 멈추고 그 작은 부탁으로 손을 옮겨낼 수밖에 없다.



날씨가 춥다.

날씨가 추워졌다.



비슷하지만 조금은 다른 말.



그 조금의 차이를 알아차릴 만큼,

그리고 바뀌어가는 계절을 알아차릴 만큼

아이가 자라나고 있었다.



28개월의 시간이 아이를 많이도 키웠다.

.

.

.



아직 두 팔에 여유롭게 안기던 모습이 선한데

이렇게 많이도 자라난 내 아이는

조잘조잘.

아빠에게 말로 공격을 퍼부어대기도 한다.



꽉 쟁여줬음에도 자그마한 어깨로 잡아내긴 어려웠는지 금세 이불이 흘러내렸다.

흘러내린 이불을 한 손에 잡고

옷을 정리하러 가는 아빠 뒤를 졸졸 쫓는다.



"날씨가 추어져서 이거 덮으꺼야아-! 안아죠오-!!!"



아빠의 큰 보폭을 쫓던 통통한 다리가 마음이 급해지니 되려 힘을 잃어 바닥에 주저앉아버리고

마음속에 있던 단어들이 정돈되지 않은 채 서둘러 튀어나온다.

"아니이-!! 아저, 아저, 아저씨이이!"

(등원 전에 문방구 아저씨에게 가서 탱탱볼 뽑기를 한 번 하기로 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말하려던 바가

휙, 뒤집듯 변질된다.

"너어-? 아저씨야?!!"

"니가 아저씨야?!!"



하하.

이 모든 말이 내 28개월 아이의 입에서 나온 말이 맞다.

아빠를 보고 '너'라고 칭해 버리더니 이내 '아저씨'라고 불러버린다.



잔뜩 떼가 들어서는 되는 대로 말을 던져대던 아이가

'니가 아저씨냐.'는 말에 결국 웃음이 터져버린 엄마아빠를 보고선

말하고자 하는 방향을 정한 듯하다.



울상이던 얼굴에 금세 웃음기를 주렁주렁 달고 벌떡 일어나서는

다시 아빠 등 뒤로 다가가 기세등등 외친다.

"아저씨 될그믄 밖에 나가!"



정말이지,

아빠에게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라고 말할 타이밍이지만

웃음이 비집고 나오느라 틈이 막혀 말은 나오지 못한다.



잠시동안 고개를 돌리고 웃음을 애써 눌러낸 뒤

뒤늦게 말을 이어 본다.

"아빠한테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그러니 엄마 아빠를 웃겼다는 뿌듯함으로 아직 웃음기가 가시지 않은 아이가 말한다.

"아즈씨 안 할그믄 아빠해!"



인심을 크게도 썼다.



아이는 이렇게

'언제 이만큼이나 자랐지' 싶게도 쑥 자라 보이다가

'아직 아가구나' 싶게 어설프기도 하다.



다양한 단어, 세상의 계절과 그에 더불어 느끼는 감정.

아이가 배우는 것들이 늘어나는 만큼

기특함도 늘어나지만

아쉬움도 함께 고개를 든다.



아이가 배움이 늘어나는 만큼

부모가 가르칠 것이 적어지고

그렇게 점점 아이는 배울 것이 더 많은 세상으로 나아갈 터이니.



아직은 어설퍼주길.

조금은 천천히 자라주길.

작은 바람이 빙그레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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