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풍또집 Nov 25. 2024

미안해. 엄마.

예상 못한 말 한마디

하루 남은 주말.



네 식구가 다 같이 집에서 뒹굴거리다가

뜬금없이 "엄마 우리 물노리 하러 가쟈-"라는 아이의 한 마디에

갈 수 있는 물놀이장을 알아보고 갑작스레 몸을 일으켜 체험형 키즈카페를 다녀왔다.



자신이 원하던 물놀이장에 간다는 사실에 들뜬 아이는

빙글빙글 웃으며 장난을 치며 달려 다니다가도

"그럼 물놀이장 가지 말고 혼자 집에 있어-"라는 엄마의 엄포 한 마디면 얌전하게 옷을 입는다.



하지만 신이 났으면 뭘 하겠는가.



잠이 안 온다며 내내 낮잠을 자지 않고 버티던 아이였기에

그리고 아직은 낮잠 없이 밤까지 눈을 뜨고 있기엔 버거운 여린 나이이기에

차에서 잠이 들어 팔다리뿐 아니라 고개까지 축 늘어트린 채 아빠에게 안겨 목적지에 들어선다.



하지만 차로 이동한 시간은 고작 10분 남짓.

아이의 잠이 그걸로 채워졌을 리가 없으니,

이제 남은 일은 눈물로 잠을 털어내는 것뿐이다.



정해진 예약 시간에 입장하여 각종 체험을 하는 수업.

시간은 다가오는데 아이의 눈물은 멈출 줄을 모르고

수영장에 안 가는 것도 싫다 옷을 갈아입는 것도 싫다며 악을 질러댄다.



엄마는 눈물을 달랠 시간이 부족해

우는 얼굴은 못 본 척 체험장에 구비된 수영복에 억지로 아이의 몸을 구겨 넣는 수밖에 없다.



잠을 안 잔 것도 본인이지만

잠을 채 못 자 가장 서러운 것도 본인.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운 그 서러움을 대신 달래줬으면 하는 엄마는

눈물 젖은 자신의 얼굴은 보지 않은 채 팔다리를 옷에 욱여넣기 바쁘니

눈물은 그치기는커녕 더 넘쳐흐르기만 한다.



본래는 엄마 없이 아이들만 들어가서 진행하는 체험 수업이지만

키즈카페 전체에 아이의 악 지르는 소리가 울려 퍼지니

결국 선생님이 나와 말한다.

"어머님, 같이 들어오셔야 할 것 같아요."



방문하여 이용 안내를 받을 때

90프로 이상의 아이들이 처음 오면 엄마와 떨어지지 못한다는 말을 듣고서

"얘는 안 그럴 거예요. 하하하.."라며 단호히 말했던 나의 말과는 다르게

내 아이 옆에만 엄마가 바싹 붙어 앉아 체험 수업을 듣는다.



그래도 엄마와 함께 수업을 들어가니 아이 얼굴에 금세 웃음꽃이 폈다.

웃음이 배시시 피어오르면서도 작은 손은 엄마 손을 놓을 생각이 없다.



첫 수업은 요리 수업

두 번째는 촉감놀이 및 물감놀이

그리고 마지막이 그토록 아이가 원하던 물놀이 시간.



요리 수업을 엄마 손을 꼭 잡고 듣던 아이는

두 번째 수업으로 이동하며 슬쩍 친구들 사이로 밀어 넣은 엄마 덕에

얼레벌레 물감놀이방으로 혼자 들어갔지만 이내 커다란 울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다시 한번 선생님이 얼굴을 내민다.

"어머님, 이것도 들어오셔서 옆에서 도와주셔야 할 것 같아요."



엄마는 수업에 방해되지 않도록 아이의 등 뒤에 말없이 앉아 수업을 지켜보고

아이는 수없이 뒤를 돌아보며 엄마가 있는지 확인한다.



문득 알아차린 사실,

'아, 우리 아이가 이런 수업은 많이 들어보긴 했어도 한 번을 혼자 들어가 본 적이 없구나.'

그저 잠이 덜 깨서 그런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아직 아이는 엄마나 아빠 없이 낯선 곳에 던져질 만큼 여물지가 않았다.



나이로 보자면 아직은 아기이지만 동생이 생기면서 왜인지 다 큰 아이처럼 느껴졌는데

뒤에 앉아 보는 아이의 등이 새삼 조그맣고 동그랗다.



그래도 거품과 물감 수업이 아이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렇게도 엄마가 있는지 확인을 해대고

그렇게도 엄마 손을 자꾸만 자기 손으로 잡아끌어 대더니만은

한 번 흥이 오르니 엄마가 눈앞에 얼굴을 들이밀어도 눈 한 번을 맞춰주지 않고 놀기 바쁘다.



그제야 안심하고 다른 엄마들처럼 체험장 창 밖 의자에 앉아 아이를 본다.

다음 수업으로 넘어가는데도 아이의 눈은 더 이상 엄마아빠를 쫓지 않고 입에 웃음을 걸었다.



재밌으려고 놀러 온 곳이긴 하지만

어린아이가 처음 낯선 곳에서 혼자 수업을 듣는 건 아이에게 여간 치열한 일이 아닐 것이기에

"재미있게 놀았어?"가 아닌 "수고했어."라는 말을 먼저 해줘야 한다는 선생님의 말을 듣고

아이에게 "수고했어."라는 말을 건네며 모든 놀이 수업을 마쳤다.



하지만 수고했다.라는 나의 말이 무색하게도

신이 날대로 난 아이는

모든 수업을 마치고도 대기실에 구비된 놀잇감들을 만지느라 키즈카페를 떠날 생각이 없다.



엄마아빠를 찾기는커녕 되려 엄마아빠가 찾아도 귓등으로도 안 듣는 아이를 보며

처음엔 낯설었겠지만 그래도 좋은 기억으로 마무리했겠거니 짐작하고 집으로 돌아와 잘 시간이 됐다.



그런데 아이가 잠자리에 누워 대뜸 말한다.

"엄마가 있는 줄 알았눈데, 엄마가 없어서 속상해떠-"

"그래서 풀이가 크게 우러써-"



자려고 눈을 감으니 힘들었던 기억이 먼저 났나 보다.



"엄마가 같이 따라간 줄 알았는데 없어서 속상했어?"

"웅- 속상해떠-"

"미안해. 엄마."

"속상해써서 미아내-?"



똑똑한 발음으로 미안해.라고 말해오는 아이의 말이 제법 어엿해 보여

놀란 맘에 순간 숨을 흡, 참았다.



"풀이가 속상한 게 왜 미안해- 속상한 건 미안한 일이 아니야!"

"아니- 내가 속상해써 미아내-"

"엄마가 뒤에 업써서 풀이가 속상해써."

"풀이는 (놀이) 매트에 들어갈 수가 없어써."



"왜 들어갈 수가 없었어? 왜? 무서웠어?"

"응- 무서워써-"



촉감놀이를 하던 도중 선생님이 발로 밟아보라며 매트 안으로 들어가 보라고 하니 어쩐지 잔뜩 얼어있더니만은,

매트 안으로 다 같이 들어가는 게 무서웠나 보다.



"무서웠눈데! 엄마가 없어써-"

"응? 아니야 풀아~ 엄마 풀이 뒤에 있었잖아. 엄마가 매트 안으로 들어서 넣어줬는데?"

그제야 엄마 손이 기억났던 듯 말을 멈추고 잠시 멈칫하는 아이다.



엄마는 아이의 주의를 좋은 기억으로 돌려보려 다급히 질문을 던진다.

"근데 물놀이장이 엄청 재밌었지? 다음에 또 갈까? 요리도 하고, 물감놀이도 하고, 물놀이도 하게~"

"어- 요리 좋아- 과자 만들을 꼬야."



요리가 좋다고는 하지만, 들어보니 오늘 간 곳이 아닌

평소 주기적으로 들으러 가는 흙놀이 수업에 요리 수업이 껴있으니 그 이야기를 하는 듯싶다.

*흙체험수업: [고마워 토토]



그 수업은 여태껏 엄마랑 들어왔으니 그 수업이 더 생각이 나나 보다.

분명 오늘 수업도 다 마치고 나서는 신나서 재밌다고 방방 뛰던 아인데

그저 엄마가 한 번 없어졌던 것 만으로 단호히 다른 수업을 가겠단다.

두 개 다 가면 되지 않겠냐고 물어도 엄마랑 같이 듣는 수업을 가겠다고 재차 답한다.



속상해서 미안하다는 아이의 말도

엄마랑 같이 듣는 수업만 가고 싶다는 아이의 말도

괜스레 마음이 찡하게 만든다.



육아의 종착지는 독립.

내가 언제나 주문처럼 외우고 있는 말이지만

아직은 너무도 어린 나의 아기.



어쩌면 나중에 성인이 되어 떠나갈 나의 아이에게 상처받지 않도록 미리금 내 마음을 보호하려는 것일지도 모를 내 주문이 오늘만은 조금 흐려진다.



'나중은 모르겠고 우선 지금 엄마아빠가 최고라는 눈앞에 이 아이나 잘 품에 안아둬야겠구나.'

'아직은 엄마아빠 품만 있으면 그저 좋을 내 작은 아기니까, 충분히 안아줘야겠구나.'



세상의 전부가 부모인 이 아이가 장성할 즈음엔

이 아이가 세상의 전부가 되어버린 나와 남편이 반대로 아이의 뒷모습만을 보고 있겠지만



그저,

그 뒷모습이 이리저리 떠밀려 힘 없이 휘청거리는 것이 아니라

상처 따위 무서워하지 않는 단단하고 꿋꿋한 모습이 될 수 있도록



그때 쓸 힘을 지금 차곡차곡 저금해 주는 것.

그게 바로 우리의 일이 아닐까.



월, 수, 금 연재
이전 12화 댜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