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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나 사랑해서 그러는 거야?

너는 그랬구나

by 풍또집

요즘 나는 화가 나있다.

'화산같이 폭발한다.'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백 번 이해가 간다.

조금만 건드려도 화가 화산처럼 터져버린다.



이런 내 기분에 피해를 보는 것은 역시나 곁에 있는 가족.

그중에서도 집에서 제일 약한 아이들이 가장 많은 피해를 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이에게 울타리가 되어주고 집이 되어주고 안전한 세상이 되어줘야 할 엄마.

그런 엄마가 자꾸만 화가 나 있으니 아이는 자꾸만 슬슬 눈치를 살핀다.



엄마는 화를 내지 않으려 아이의 눈을 피해버리고 아이는 그런 엄마의 눈을 애처롭게 쫓는 것이 요즘의 일상이 됐다.



아이가 환히 웃는 시간은 바로 먹는 시간.

이제는 스스로 먹을 수 있는 아이지만 엄마에게 먹여달라 어리광을 부린다.

그리고는 입에 먹을 것을 받아 넣으며 묻는다.

"엄마! 풀이한테 이고 왜 주는고야?"



이 말을 왜 하는지 알고 있다.



전에 평소엔 잘 주지 않던 케이크를 나눠준 적이 있다.

아이 마음에도 의아했는지 물어왔다.

"엄마, 풀이한테 이고 왜 주는고야?"



별 날은 아니었다.

그저 아이가 좋아하는 생일축하 놀이를 해주고 싶었고

아이가 좋아하는 케이크를 나눠먹고선 함께 실실 웃고 싶었다.

이 말을 어떻게 정리할까, 하다가 답 했었다.

"엄마는 풀이를 사랑하니까?"



이 말을 듣고 아이가 그리 좋아할 줄 몰랐는데

엄마의 답을 듣더니 아이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 작은 조각케이크 한 조각을 나눠먹는 동안 아이는 연달아 다섯 번은 물었었다.

"엄마, 이고 풀이한테 왜 주는 고야~?"



듣고 싶은 답이 있었겠지.

아낌없이 "사랑하니까!"라고 말해줬다.



그리고 엄마가 눈썹이 자꾸만 산을 그리고 있는 요즘,

아이는 질문이 잦아졌다.

"엄마, 풀이 이고 왜 주는 고야-?"



처음 이 질문을 던졌을 때 상기된 표정과는 다르게

아이 눈빛이 미세하게 초조해 보인다.



이 아이는 지금 엄마의 사랑을 의심하고 있다.



"엄마가 왜 풀이한테 이걸 주는 거 같아?"

"엄마가 풀이를 사랑해서 주는 곤가-?"

역시나 초조한 눈빛으로 답을 기다린다.



역시나.

이 아이가 듣고 싶은 말은 '사랑'

엄마의 애정이 느끼고 싶은 아이가 자꾸만 음식을 먹여달라 하며 음식을 애정과 연결 짓고 있었다.



아직 여물지 못한 어린 내 마음이

몸의 피로를, 내 삶의 부족한 여유를 견디지 못해

이 작은 아이를 떨게 만들었다.



아이와 있는 내내 허공을 바라보는 내 눈

한숨을 지어내는 내 입

그리고 잔뜩 화가 난 목소리가

밝기만 했던 내 아이를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그리고 자기 전에 아이는 이런 말도 했다.

"엄마, 내가 어린이집에서 소리 지르구 던져서 미아내-? 내가! 에뿌게 말하께-?"

"엄마도 소리 지르지 말구 에쁘게 얘기하믄 조케찌-?"

"그러믄 우리가 사이좋게 지낼 수 있게찌-?"

"풀이가 이러케 안아주믄 되쟈나-"

하며 엄마 목을 힘껏 껴안는다.



"엄마가.. 소리 질러서 미안해. 엄마가 소리 안 지를게 미안해."

"아냐- 미안한 고 아니야-"



그렇게 아이는 모자란 엄마를 품어준다.

엄마는 오늘도 죄인이다.

그리고 내일도 죄인이 될 것이다.

엄마는 지쳤고 아이는 엄마가 전부인 약자이니까.



누군가는 아이에게 화를 내면 안 된다 하고

누군가는 어떻게 아이에게 화를 안 낼 수 있느냐 한다.



둘 다 맞는 말이다.

아이에게 분풀이를 해서는 안 되지만

화를 안 내기도 어려운 것이 육아다.



아들 둘셋 있는 엄마들의 화를 해학적으로 담은 영상도 여러 개다.

아들이 둘인 나는 그 영상을 보고서 떨고 있는 내 아이도 보면 마냥 웃음이 나오진 않는다.



그래서 내 아이를 지키기 위해

그저 시간이 약이겠지 하지 않고

상담을 다녀와보려 한다.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내 아이가 더 이상 자신이란 존재의 소중함을 의심해선 안 되니까.

엄마는 아이를 향한 창이 아니라 방패막이 되어 주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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