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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친하게 지내자.

내겐 너무 슬픈 말

by 풍또집

전에 썼던 것처럼 나는 상담을 받으러 가기로 했다.

심사숙고하여 천천히 상담센터를 골라보려 했으나

생각보다 서둘러야 할 듯 싶어 대충 눈에 보이는 센터에 냅다 전화하여 예약 문의를 했다.



나는 매일 아이를 윽박지른다.

고작 세 살의 아이.

그 어린아이를 저리 가라며 밀어내기도 한다.



그리고 어제는, 아이를 때렸다.

허벅지를, 등을, 그리고 그 보드라운 배도 매섭게 때렸다.



아이는 그저 아이답게 울었을 뿐이다.

평소 동생과 함께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어 잠시 뒹굴다 잠이 드는 아이는

오랜만에 아빠와 함께한 주말 밤이어서 그랬을까,

잠이 안 온다며 노상 자는 시간에 침대서 나와 엄마아빠와 밤 시간을 더 보냈다.

그리고는 시간이 너무 늦어 더는 안 되겠다 싶어 다시 침대에 눕혔다.



잘 시간이 되면

단 한 번을 자지 않겠다거나 엄마 아빠 나가지 말라고 떼를 쓴 적이 없는 나의 아이는

잘 시간이 훌쩍 지난 늦은 밤이기에 바로 잠에 들 줄 알았건만 웬걸,

침대에 눕혀지자마자 돌연 소리를 지르며 울기 시작했다.



시간이 늦었으니 눈에 잠이 들어차 다른 날과는 달리 떼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당연히 깊게 잠이 들었던 동생도 눈을 떠서 함께 울기 시작했다.

그냥 투정 정도가 아니라 악을 지르며 방방 뛰는 강성 울음이었기에.

(아이와 동생은 한 방 한 침대에서 잔다.)



요 근래 나는

어디서 솟아오르는 화인지도 모르게 가슴이 타는듯한 화를 꾹꾹 누르며 살고 있었다.

가슴이 타다 못해 코도 눈도 매운 느낌이었고 머리가 항상 묵직하게 아파오곤 했다.



그렇게 솟구치는 화가 마음에 있으니 당연히 아이들에게까지 신경질적인 태도가 닿았으나

육아에 지친 한 엄마의 흔한 윽박지름 그 이상은 아니었다.

그저 인내심이 바닥났다. 나의 바닥난 인내심이 저 세 살배기 아이에겐 가혹하다. 정도의 마음이었다.



그런데 두 아이의 울음을 듣는 순간,

머리에 핑- 뜨거운 것이 흘렀고

아이의 연한 살 여기저기를 내 투박한 손으로 때려대며

아이보다

더 크게, 더 크게

악을 질렀다.



이 모든 것을 본 남편도 충격을 받았고

마침내 두 아이를 다시 재우고 나온 나를 붙잡아



처음엔 나를 달래 보려다

그다음엔 화를 냈고

그리고 다음엔 흐르는 내 눈물에 함께 울먹였다.



"상담, 받자."

그가 내린 결론이었다.



내가 이렇게 아이를 때리기 전 날 아침 아이는 내게 말했었다.

"엄마! 내가 아까 짜증내서 미아내-? 풀이가 짜증 내지 않으께-"

"엄마도 짜증 내지 마~"

"우리~ 화내지 말구 친하게 지내쟈~?"



어린이집에서 반복해서 들었던 말이기에 한 말이겠거니 싶긴 했지만 마음이 아팠다.

엄마와 아들 사이에 친해지자, 라니.

"풀아, 엄마랑 풀이는 이미 친하잖아!"



아이는 웃음기를 머금고 입술을 살짝 내밀더니 한쪽 눈을 찡그리며 부정하는 표정을 지어낸다.

"에이, 아냐~ 우리 친하게 지내쟈~"



이 작은 아이가 느끼기에도 요즘의 나는

원래 알던 엄마와는 다른 낯선 느낌이었던 것이었겠지.



그 말 한마디에 마음이 저려왔던 엄마는

그 말을 곱씹고 또 곱씹으며 아이에게 화내지 않겠노라 다짐했것만 겨우 다음날에 아이를 무자비하게 벼랑으로 내몰았다.

훌쩍이며 침대 한 구석에서 조용히 잠들게 만들었다.



그저 조금 지쳐 원래도 불같은 성미에 더 불이 붙었겠거니 했었다.

다 큰 어른에게도 소리를 높이기는 쉬운 일이 아닌데

그 작은 아이에게 찢어지게 소리를 지르며 폭력을 쓰고 나니 뭔가 잘못됐다. 싶었다.



돌아보니 운전을 하던 중 갑자기 눈물이 나기도 했다.

기분이 나쁘거나 우울했던 건 아니었다. 그저 눈물만 났다.



내 마음에 돋아난 가시가

그저 지나가는 일일줄 알았건만 기어코 아이를 다치게 했다.



어린이집에서 하원하는 아이의 얼굴이 밝지가 않다.

어린이집 생활이 아무리 즐거운들 그래봐야 눈치 보고 조심해야 하는 아이 나름의 불편한 사회생활일텐데

집에 돌아와 편히 쉬며 위로받기는커녕 상처를 입어버렸으니,

이리저리 치이는 짱돌이 따로 없었을 터.



부디 내 아이의 마음에 난 상처가 흉터가 되지는 않기를 바라며

일정을 재촉해본다.



부디,

내가 하는 어떤 해결들이

아이 맘에 이미 난 상처가 아물기 전에 다른 상처가 나기 전에 내 가시를 뽑아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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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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