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롱 기자'의 출입처에서 유유자적하는 삶
이런, 구내식당에 들렀더니 메인 메뉴가 불고기다. 평소 같았으면 두 팔 벌려 환영하는 음식. 속으로 '어제 저녁 집에서 불고기 해먹었는데' 생각하며 씁쓸하게 입맛을 다신다. 그러면서 불고기 추가배식 코너로 향해 이미 받아둔 불고기만큼 식판에 또 불고기를 담았다. (?)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는 테이블 사이를 헤쳐 나갔다. 혼밥을 위한 공간 창출에 성공했다. 이내 착석해 무선 이어폰을 꽂는다. "경제란 무엇인가"라는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구내식당 불고기를 음미했다.
'음, 내가 집에서 혼자 해 먹었던 것보다 훨씬 맛있군. 혼자 밥 먹는 건 똑같지만...'
업계에 몸담기 전, 그러니까 언론사 입사를 준비할 때는 기자 업의 본질이 글 쓰고 말하는 것인 줄 알았다. 시민들이 기자를 접하는 통로가 대개 포털뉴스/신문/방송이고, 기자 지망생들의 가장 큰 난관은 논술력을 평가하는 필기시험이라.
그런데 일을 시작하고 알게 됐다. 이쪽 일은 기사 쓰는 것보다 사람 만나는 게 훨씬 중요하고 비중이 높다는 걸. 기자란 글쟁이 이미지가 있는데, 현장에서는 약간 영업사원 느낌에 더 가까워 보였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말 턱턱 걸고, 친화력 있게 행동해 호감 얻고, 식사 자리 만들어내고, 취재원과 관계 이어 나가고...
신기한 건, 우리 공장에서는 사람 만나라고 압박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공장에서는 '취재는 발품이 너무 많이 드니 그 시간에 분석기사에 매진하라'고 요구한다. 주변 기자들은 상당히 의아하게 여길 법한 이른바 '나이롱 기자'의 탄생이다. 기자로서 커리어를 쌓는 데는 아주 꽝이지만, 직장인으로서 근무 여건은 상당히 괜찮다.
혼밥하면서, 그러니까 취재도 안 하고 어떻게 기사 쓰냐고 물을 수 있겠다. 신랄한 지적이다. 취재원으로부터 소스를 슬쩍받아 써내는 단독기사는 언감생심이다. 딱히 출입처 사람들과 취재 경쟁 불태울 일도 없다.
다만, 혼밥하면서 출입처와 항상 거리두기 하며 살았기에 '조지는' 기사는 누구보다 편히 써낼 수 있는 것이다. 식사하고 통화하며 신세 진 취재원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 소스 못 받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 같은 것도 없다. 국회라 가능한 근무방법이라 생각한다. 공개적인 여당 이야기만 열심히 들어도 야당 깔 것을 발굴할 수 있고, 반대로 야당 공식 논평들에 귀기울여 보면 여당 깔 게 세상 천지다.
타사는 출입처 떠날 때 돼서 '굿바이 기사'라는 걸 써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차피 떠날 테니 출입처 한 번 시원하게 조져주고 가겠다는 취지의 기사다. 이에 기반하면, 나이롱 기자는 매일매일 굿바이 기사 거리를 찾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밥/술 대신에 영상/텍스트에 파묻혀 산다는 게 다르지만.
언젠가 읽었던 <리영희 평전>. 리영희 선생은 술과 밥 대신 책과 외국어를 가까이했다고 한다. 또 '공부하는 기자'를 강조했다고 한다. 그래서 비판의식이 잘 벼려진 칼럼들을 써낼 수 있었고, 종국에 '사상의 은사'로 불릴 만큼 족적을 남겼다고. 이 일을 언제까지 할지는 모르겠는데 하여튼 지금 당장은 그 이야기에 눈길이 간다. 업계에서 "뭔 책이고 공부야, 그 시간에 사람을 만나"라고 지적하는 분들이 계시겠지만, 그런 마인드로 국가를 경영하다가 탄핵당해버린 국가 지도자를 우리는 알고 있다.
출입처 구내식당에서 불고기 혼자 음미하는 기자다. 그래도 길을 찾는 중이다.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겠다는 각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