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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새벽, 갑작스레 잠에서 깨어났다. 아마 어제 아주 늦은 식사와 그 곁에 곁들인 맥주 때문이었을 것이다. 목이 몹시 말랐다.
몇 분 동안 멍하니 누워 있었다. 그러다 타들어 가는 목구멍을 더는 버티지 못해 겨우 몸을 일으켰다.
몸이 술기운 때문인지 잘 가눠지지 않았다. 천천히 일어나려 해도 영 말을 듣지 않는다. 목에서는 쉰 소리가 흘러나왔고, 나는 혼자 끙끙대며 몸을 일으켰다. 어두운 방의 불을 켜려고 스위치를 더듬어 찾았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뭐지? 여기 우리 할머니 집인데?’
당황스러웠다. 할머니 집에서 깨어난 것도 이상하지만, 할머니 방에서 일어난 것이 더 이상했다. 침대에 누워 계셔야 할 할머니는 보이질 않았고 집 안은 나 혼자만 있는 듯 적막함만 감돌았다.
그 생각도 잠시, 몸이 비틀거리다 못해 넘어질 것 같은 아찔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문고리라도 잡으려 손을 뻗었다.
그런데 내 손이 낯설었다.
주름이 깊게 파인 손. 마치 우리 할머니의 손 같았다.
너무나 당황해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세상에.
이거, 영락없는 우리 할머니의 모습이다.
나는 어느 날, 할머니가 된 것이다.
너무 놀란 나머지 침침한 눈으로 전화를 걸었다.
‘내 전화번호… 010-XXXX.’
전화 신호음이 울린다.
이게 무슨 일일까. 식은땀이 나고 심장이 쿵쾅거렸다. 휴대폰을 잡은 손이 떨렸다. 나는 간신히 그것을 부여잡은 채 전화를 받을 때를 기다렸다.
“여보세요.”
내 목소리다.
나는 받자마자 알 수 있었다. 그 목소리가 할머니라는 걸.
왜냐하면 그 와중에도 할머니 특유의 억양과 높이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
어느 날, 할머니와 나는 바뀌었다.
이 미스터리한 일로 인해 우리는 한 달 정도 할머니 댁에서 함께 지내기로 했다. 해야 할 일들, 출근은커녕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잠시 모든 사람들과의 연락을 끊은 채 우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손녀와 할머니가 단둘이 여행을 간다는 소식만 남겼다.
그리고 집에는 우리 둘만 남았다.
하루, 이틀, 일주일.
시간이 그렇게 흘러갔다.
하지만 어떤 해답도 찾지 못한 채 우리는 어쩔 줄 몰라했다.
한 달이 지나자 어쩔 줄 몰라하는 마음마저 사라졌다. 그저 익숙해졌다. 정말로 우리는 서로가 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할머니가 되었고, 할머니는 정말로 내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정말 그렇게 변해버렸을 때, 내 손녀는 너무 오래 쉬고 있었다며 다시 떠났다.
나는 다시 고요하고 적막한 집에 홀로 남게 되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치우고 또 치웠다. 거실 바닥도 힘든 몸을 끌고 닦았다. 허리를 펴는 것조차 오래 걸렸다. 화분에 물을 주고, 밥을 먹고, 설거지를 했다.
잠시 방에 들어가 TV를 보다가 눈을 붙이기도 했다.
그러면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그리고 나는 기다렸다.
손녀의 전화가 올 때를.
오늘은 별일이 없었는지, 궁금한 것이 많았다. 어떤 일을 하는지도 사실 잘 몰랐고 어떻게 사는지도 잘 몰랐다. 그런데도 도통 자기 이야기를 해주지 않는 손녀가 때로는 야속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했다.
내 딸을 닮은 것도 아닌 것 같았다.
무뚝뚝하게 변해버린 손녀가 애틋하면서도 마음이 아팠다.
밤 10시쯤이면 늘 전화가 왔다. 그래서 나는 친구들과 연락을 하더라도 저녁 전에만 하는 편이었다. 혹시 전화가 겹칠까 봐, 내가 못 받을까 봐.
오늘도 밤 10시가 넘어 전화가 온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나는 이 아이를 너무나 많이 사랑한다.
하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여전히 모르겠다. 사랑하는 방법이 아흔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어렵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같은 말을 반복한다.
밥은 챙겨 먹어라.
푹 쉬어라.
늘 변함없는 말들과 함께 나는 여전히 잔소리밖에 할 줄 모르는 할머니다.
여기까지는 물론 내 상상이다.
할머니와 나는 여전히 다른 사람이다. 그래서 서로의 사랑을 이해하고 알아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누군가가 정의해 놓은 사랑의 모습, 누구나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사랑의 모양과 색깔은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모습의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어쩌면 조금 다른 모양의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가끔은 이런 생각도 한다. 언젠가는 그렇게 할 수 있겠지 하고. 하지만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리고 그것을 억지로 바꿀 자신이 없다면 우리는 어쩌면 정해진 사랑의 모습에 맞지 않는 자신을 부정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사랑은 참 위대해 보이고 커 보인다.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보던 사랑처럼 말이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의 사랑도 결코 작지 않다.
말 대신 밥을 챙겨주고,
표현 대신 걱정을 하고,
다정한 말 대신 잔소리를 건네는 것.
그것도 누군가가 할 수 있는 전부의 사랑일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지금의 우리가 표현할 수 있는 사랑, 지금의 우리가 건넬 수 있는 사랑을 사랑하는 이에게 조금이라도 전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그리고 그 사랑을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의 사랑은 어떤 모습이든 괜찮다고.
우리의 사랑은 어떤 모습이든 괜찮다.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방식이라면,
그것도 분명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