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m
김조민
편지를 태운다 느릿하게
종이를 타고 들어가는 붉은 선
금지된 냄새가 났다
언젠가 어떻게든 그렇게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단어들이
제 몸을 끊으며 나타났다 사라졌다
종이의 어떤 부분은 불길한 동그라미였다
슬픔과 절망이 새겨졌던 장막은 견고했다
그 정도 하면 되지 않았어?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나에게 그러한 질문은 무례하다
검붉다가 검다가 진회색이 되어가는 낡은 편지에서 툭 떨어진 것은
자꾸 맺히던 눈물이었다
창밖으로 저녁이 왔다
서녘의 모든 것을 붉게 물들이며 하나의 해가 지고 있었다
산과 하늘과 바람과 새가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타오름이 있었다
오래 젖었던 마음을 창가에 건다 끊임없이 흔들리며
낡아지지 않을 편지의 첫 문장이 조금씩 선명해지는 새벽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