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갈대처럼 흔들린다

[ 단편소설 연재 ] < 불편한 진실 > 유정 이숙한

by 유정 이숙한

백 년 묶은 방울 나무가 토하듯 꽃가루를 쏟아냈다.

나무는 표피를 한 겹 벗으며 둘레를 키우고 표피를 한 겹

벗을 때마다 둘레를 키워나간다.


현우는 켜켜로 쌓인 마음속 질곡을 벗어던졌다.

하연은 운동장에 뒹구는 나무들의 잔해들을 치운다.

남편과 추억의 잔해를 쓸어내린다.


넓은 운동장을 들락거리던 비바람이 꽃가루를 밀쳐내

계단 아래로 모아 놓았다.

사랑의 꽃가루가 그녀의 빈 가슴에 쌓여 갔다.


현우는 대기업 연구소에서 신제품 개발업무 일을 했다.

동료들이 주식으로 돈을 버는 것을 보고 샘이 나서 뒤늦게

주식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는 적은 돈으로 주식을 하다 보니 성이 차지 않았다.

때마침 기회가 왔다.

음식 냄새를 맡으며 주방을 전전하지 않아도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설렜다.

기회가 왔을 때 잡고 싶었다.


누군 주식으로 대박 나고 평생 손가락이 뒤틀리고 손톱이

갈라지며 칼질하며 음식 냄새에 파묻혀 사는가, 행운의 여신이 준

기회이고 선물일까,



현우는 살고 있던 2층 집을 팔아 4층 짜리 빌딩을 샀다.

일부는 대출을 받고 1층은 전세로 충당했다.

'다들 집을 사고팔아 재테크하던데 기회가 왔나 보다!'

그는 새 집을 사고 얼마 되지 않아 집값이 올랐다.

다들 부동산으로 부를 축적하는 거 같았다.


우량주 주식을 사기로 계획한 현우는 희망에 부풀었다.

한두 주만 지나 부자가 될 거라고 생각하니 날아갈 거 같다.


아내가 알면 반대하는 건 자명한 일.

그는 주식으로 대박 나서 아내를 호텔방 VRP룸에서 이벤트를 할 생각이었다.


과정이야 어떻든 결과가 좋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아내 몰래 집 판 돈 일부를 꿍쳐 우량주 주식을 샀다.


그동안 쫄띠기처럼 적은 돈으로 주식을 사다 보니

양이 차지 않아, 우량주 주식으로 대박이 나서 큰소리치고 싶었다.


호텔 조리부장 일을 그만두고 사업을 한답시고

여러 번 돈을 까먹었다.

지금이야말로 아내에게 큰 소리 칠 순간이 곧 온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집 다오'

주문을 외웠다. 도깨비들의 심술인가?

그가 찍은 우량주 주식이 하한가를 치며 찍은 품목마다 곤두박질치고 있다.


큰 손이 거저 주운 우량주 주식을 한 방에 풀었다.

거금 일억을 투자했는데 쪽박이 났다.

쪽박도 쪽박 나름이지, 일억이 사백만 원이 되었다.


웬 조화인가, 도깨비장난인가?

부자의 꿈은 추풍낙엽이 되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이 없다.


올 것이 왔다.

아내 몰래 꿍친 돈이 꼬리가 잡히고 말았다.

그야말로 고양이 앞에 생쥐 신세라니..



하연은 남편과의 좋았던 기억이 희미해졌다.

잘해준 건 생각나지 않고 서운한 기억만 남았다.

구박만 받다가 사랑을 받으니 적응되지 않는다.

현우가 졸혼을 했다는데 믿어지지 않는다.


하연은 괴로운 마음을 고해성사하듯이 고백한다.

찬혁의 작업실에서 커피를 마시며 걷잡을 수 없는

사랑의 풍랑에 한없이 바다로 떠밀려 간다.


누군가 그녀를 붙잡아주기를 기대하는 걸까?

불편한 진실을 찬혁에게 고백하고 말았다.

현우에게 떠밀려가는 마음을 다잡아 보지만

마음이 자꾸 간다.

답답한 마음을 털어내고 싶은 심정일까.

보상받고 싶은 걸까,


찬혁은 하연의 이야기를 묵묵히 듣는다.

'이 여자가 나에게 그런 고백을 하는 걸까? 붙잡아 달라는

이야기인가?'

찬혁은 하연의 마음을 가름하기 어려웠다.

찬혁의 가슴이 하연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찬혁의 기타 연주에 하연의 마음이 흔들렸다.

찬혁은 하연이 퇴근길에 커피 한 잔 하고 가라고

문자를 보냈다.

점심을 차려놓고 하연을 붙든다.


하연은 그림을 그리고 액자가 필요해서

그의 작업실에 갔다. 그가 뜯어준 상추를 듬뿍

받아와 닭가슴살 샐러드를 만들었다.

그에게도 갖다 주었다.


가까운 곳에 살고 있으니 자주 얼굴을 본다.

현우는 먼 곳에 있어 얼굴이 그려지지 않는다.

하연의 마음이 갈대처럼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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