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연재] < 종독되었다> 유정 이숙한
2주 만에 집에 왔다. 그동안 회사 숙소에서 지냈다. 작업복이랑 빨래도 내가 직접 세탁하고 집에는 가져오지 않았다. 8월 한가운데 무더운 여름이다. 2주 만에 보는데 찬바람이 쌩쌩 부는 아내에게 숨이 막히고 질렸다.
집이라고 들어가면 따뜻한 구석이 있어야 하는데 전혀 없다. 나 역시 호적 상 남편이니 안 들어갈 수 없어 가끔씩 들를 뿐이다. 막상 집에 들어가도 아내의 눈을 피해 작은 다른 방에서 쪽잠을 자고 나온다. 아내와 이십 년 넘게 한 이불속에서 살았는데 내 돈도 내 돈, 네 돈도 내 돈인 아내 지은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늙어서 편안하게 같이 살기 위해 노후대책으로 힘든 일 하며 다달이 적금을 부어 목돈을 탔는데.. 아내는 노후대책에 관심이 1도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아내 지은은 결혼해서 쭉 살아오던 집에 지금도 살고 있다. 같이 살던 남편이 죽고 새 남편인 나로 바뀌었을 뿐이고 환경이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아내의 집에서 물 위에 뜬 기름처럼 겉돌고 있다. 어쩌면 장기 투숙한 손님인지로 모른다. 아내는 나와 잠자리를 거부한 지 2년이 되어간다. 나는 머리가 복잡하지 않고 단순해 본능에 충실할 뿐이다. 배가 고프면 배를 채워야 하고 사랑이 고프면 사랑을 해야 한다. 배운 것은 없지만 몸은 내 마음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나는 최소 이틀 걸러 한번은 잠자리해야 세상 사는 락을 느낀다. 그 마저 허락되지 않으니 마음 둘 곳이 없어 비참하기 짝이 없다. 아내도 내가 지방에 집을 한 채 산 사실을 알고 있다. 아내는 나한테는 관심이 없지만 자식들과 손주들이라면 깜박 죽는다. 아내는 슬하에 아들 형제를 두었는데 그 애들은 나와 성이 다르다. 우리가 부부 인연을 맺고 산 지 어언 이십 년이다 보니 아내의 피붙이를 난 친자처럼 생각하고 있다. 내가 외로울 때 만난 아내였고 난 아내를 사랑했으니까, 친자는 아니더라도 아내의 짐을 나눠지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아들이 집 살 때와 차량 살 때 난 돈을 보태주며 당당하게 아버지 노릇을 했다. 더운 날 엉덩이에 땀띠 나면서 택시를 운행하여 번 돈으로 적금을 부어 목돈으로 탔는데 피 같은 돈을 그들에게 보태줬다.
큰 걸 바라지 않는다. 자식들에게 새아버지란 말을 듣고 싶다. 생물학적 아버지는 아니더라도 아버지로 대접받고 싶었다. 아내와 산 이십 년 동안 새아버지란 말을 한 번도 듣지 못했다. 며느리들도 날 시아버지로 대하지 않고 엄마 옆에 더부살이하는 남자로 본다. 이대로 살다 나이 들면 내가 행려자로 버려지거나 정신병원에 버려질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힘들게 일해서 아내의 자식들과 손자들 뒤치다꺼리나 하다 나이 들고 힘 없어지면 난 내쳐질 판이거나 행려자로 버림을 받을 수 있다.
20년이란 긴 세월을 성실한 남자로 다정한 남편으로 집안일이나 대소사와 농사일과 잠자리까지 성심을 다해 가정에 봉사해 왔는데 이건 나에게 가혹한 형벌이 아닌지, 여자들이란 속 다르고 겉 다른 걸까. 힘들게 번 피 같은 돈을 지원해 주었건만 아내나 자식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한 번도 듣지 못했다. 자식들에게 난 여전히 아저씨로 불리고 있을 뿐이다.
첫째 아내와 이혼하며 떼어놓고 온 내 유전자를 물려받은 피붙이들도 평생 먹고 쓰고 공부할 것까지 주고 왔건만, 결혼할 때 날 부르거나 찾지 않았다. 우린 영영 남이 된 건가? 그 아이들이 아버지에게서 버려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어쩌다 내 인생이 이 지경이 되었는지, 자업자득이란 말인가. 첫 번째 아내는 대학을 나오고 나는 초등학교를 졸업했으니 서로 문화가 달라서 인가. 아님 추구하는 바가 다른 건지 도대체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