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세이 ] < 행복이 머무는 시간 > 유정 이숙한
글을 쓰다 양파껍질물이 완성되어 불을 끄려고 주방에 갔다.
안경을 쓰고 보니 평소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깨끗한 줄 알았는데 무척 지저분하다.
안경을 벗으면 내 눈에 보이는 살림살이와 세상이 깨끗하다.
보이지 않는 세게에 갇혔던 걸까?
안경을 쓴 채 목욕탕에 가면 파리똥만 한 작은 곰팡이도 보인다.
얼굴에 핀 검버섯이나 티끌들까지 자세히 보인다.
그럴 땐 보이지 않는 편이 나은 것 같다.
식초로 얼굴과 팔을 닦아본다.
검버섯들이 조금 흐려진듯한데 잊어버리고 하지 않는다.
옆지기가 검버섯이 흐려지는 화장품을 사줬다.
열심히 발라보지만 나이 들어 생기는 걸 어쩌겠나!
목욕탕 슬리퍼에 핀 곰팡이 제거하기 위해
3일째 식초와 소다, 소금과 세제를 푼 물에 담갔다.
안경을 쓰고 보니 원래 가진 색이 벗겨질 정도로 더럽다.
미련 없이 버리고 싶은 충동이 인다.
사오천 원이면 목욕탕 신발슬리퍼를 사는데
궁상을 떠는 것 아닌가. 5년 넘게 신었으니 그럴 수밖에
습기가 많은 환경이니 어쩔 수 없다고 변명한다.
안경을 쓰지 않고 음식을 만들면 기다란 머리카락이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하는데 깜박 잊고 안경을 쓰지 않았더니
맛있게 식사하다 국이나 찌개, 나물에 든 머리카락을 건져낸다.
나 같으면 비위가 상해서 토할 거 같은데 아무 말이 없다.
그럴 땐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다.
머리를 뒤로 질끈 동여맸는데 옷에 떨어진 것인가?
앞치마를 둘렀어도 어디로 들어간 걸까,
참 비위도 좋다. 인성이 좋아서인가, 더 조심해야지
화를 내거나 성질을 내면 덜 미안한데 말이 없다.
식당에서 밥을 먹다 머리카락을 건져내고 또 먹는다?
식품제조업에 종사할 때 햇섶 교육도 여러 번 받았다.
머리카락이 혼입 되면 안 되는 이물질이다.
주방에 들어서면 예전처럼 옷에 묻은 머리카락이나
이물을 끈끈이로 찍어낼 때도 있다.
머리 염색할 때 계란노른자에 염색약을 풀었더니
머리카락이 덜 빠져서 그런 걸까,
요즘은 머리카락이 나오지 않는다.
머리카락은 언제 또 '짜잔' 하고 등장할지 모른다.
노트북에 앉아 글을 쓰는데 주변에 길고 작은 머리카락 천지다.
작은 먼지와 지저분한 것들을 빗자루로 쓸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