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연재] <늑대 마을에 간 진희 > 유정 이숙한
검찰청에서 출두명령고지서가 날아들었다. 진희네 집이 발깍 뒤집혔다. 진희가 갈빗집에서 서빙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엄마는 출두명령고지서를 받고 기절초풍하였다. 영롱한 아침이슬처럼 귀하게 키운 딸인데 비 오는 날 우산이 되어주지 못한 부모의 신세를 한탄했다. 마음이 울적해진 진희의 아버지는 천정을 바라보고 멍하니 누워 한 곡조 길게 뽑아냈다.
"이 풍진(風塵)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푸른 하늘 밝은 달 아래 곰곰이 생각하니 세상만사가 춘몽 중에 또다시 꿈같도다."
부귀와 영화를 누릴지라도 봄 동산 위에 꿈과 같고 백 년 장수를 할지라도 아침에 안개구나,
담소 화락에 엄벙덤벙 주색잡기에 침몰하여 세상만사를 잊었으니 희망이 족할까. 희망이 족할까,
진희의 할아버지가 1930년대에 불렀다던 '희망가'를 2000년대 50대인 아버지가 구슬프게 뽑아내더니
방구들이 무너져 주저앉도록 긴 한숨을 몰아쉰다. 가사 한 구절 한 구절이 끈끈하게 달라붙었다.
건설회사 현장책임자로 잔뼈가 굵은 부친은 3층 난간에 매달린 젊은 노동자를 구하려다 그만 3층 난간에서 낙상하여 떨어져 척추를 다쳐 1년 가까이 치료를 받고 있는데 하반신을 쓸 수 없어 2년째 와병 중이다.
진희는 항상 밝고 긍정적이던 아빠가 패인이 되어가는 것을 보며 가슴이 무너진다. 돈 벌어서 아빠에게 휠체어도 사다 주고 온 가족이 놀이 공원에 같이 가는 게 소원이었다.
법원통지서가 진희의 주소지가 있는 서울 집으로 송달되었다. 부모는 딸이 갈빗집에서 일하는 줄 알았다.
잘 있으니 오지 말라던 진희가 비둘기 집에 근무한다고 하니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그동안 진희가 보내준 돈이 딸의 등골을 빼먹었다고 생각하니 가슴을 쥐어뜯고 싶은 진희 엄마였다.
진희 엄마는 진희를 데리고 서울로 올라갔다. 살고 있던 전세방을 빼고 월세방을 얻었다. 퀴퀴한 곰팡이 냄새, 비가 오면 벽에서 맑은 물이 줄줄 흘러내렸지만 비둘기 집에 비하겠는가, 그만하면 호텔이지. 월세로 방을 얻고 나니 약간의 여윳돈이 생겼다.
법원에서 비둘기 집과 싱싱 룸, 같은 업소들이 1심에 패소하자 항소했다. 진희는 재판기일에 맞춰 사건의 키를 쥔 핵심증인인 진희가 가야 했다. 진희는 그들과 대면하려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청심환 한 알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다 삼켰다. 마음이 편해지고 안정되었다. 재판기일에 증인석에 앉은 진희. 반대편 변호사가 묻는 말에 간단명료하게 있는 그대로 가감 없이 진술했다. 생전 처음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판사 앞에 섰다.
재판이 끝나자 밖으로 나온 진희는 귀염 늑대에게 잘 들어갔다고 전화를 했다. 소녀 가장으로 월세방에서 살아야 하니 당분간 전화도 할 수 없고 얼굴도 볼 수도 없다며 연락하겠다고 말하고 통화를 종료했다.
이글거리는 한낮의 뜨거운 열기로 엿가락처럼 늘어진 아스팔트의 허리를 휘감았다. 진희는 166cm의 키에 풍만한 가슴, 22인치 개미허리를 가진 글래머였다. 늑대들의 미끼상품이 아닌 어엿한 숙녀로 변신했다.
진희는 육교에 올라가서 아득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사연들을 간직하고 살고 있다.
슬픔과 기쁨, 웃음과 눈물은 감추고 살까? 그런 상상에 잠긴 진희는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기차가 달리고 있다. 한줄기 시원한 소나기가 강한 바람과 함께 뜨겁게 달궈진 아스팔트를 적시고 있었다. 진희는 아빠가 그리우면 귀염늑대를 만났다. 아빠처럼 따뜻하고 포근했다. 귀염늑대에게 서울에서 잘 있다며 편의점에서 일하며 대입검정고시를 봐서 대학에도 갈 거라고 말했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하며 대입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진희는 합격하면 야간대학에 다니기로 마음먹었다.
- 내 인생은 다시 태어나는 중이어요. 이젠 예전의 꼬맹이로 돌아갈 수 없어요, 어엿한 숙녀로 재탄생해서 나중에 귀염 늑대 아저씨처럼 멋진 사람을 만날 거야, 꼭…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