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연재] <늑대마을로 간 진희> 유정 이숙한
진희는 그리움이 파도처럼 일렁인다. 습관처럼 핸드폰에 손이 간다. '열까 말까?' 만지작거린다. 환청처럼 귀염 늑대 목소리가 들려온다. 습관이 무서운 진희다. 참기 힘든 고문이었다. 매일 밥을 먹듯이 귀염 늑대와 통화를 하며 외로움을 견뎌냈다. 서울 하늘이 온통 붉은빛이 되어 거리에 스치는 사람들의 얼굴이 불그레 익었다. 하늘가에 귀염 늑대 아저씨의 웃는 얼굴이 일렁인다.
육교 위 서쪽 하늘이 붉은빛이 사라져 가고 있었다. 진희는 육교를 내려와서 정처 없이 걷고 있다. 저쪽에서 걸어오는 한 청년이 있었다. 매일 편의점에 찾아와 컵라면을 사 먹는 잘 생긴 청년이었다. 청년이 말을 걸어온다.
- 안녕하세요?
- 네, 어디 갔다 오세요?
- 저어기, 육교에…
- 진희 씨? 대학생이세요, 2부인가요? 가끔 보면 책을 보시는 것 같던데…?
- 아아뇨(말끝을 흐리며)? 오빠는 대학생이시죠?
- 낮에만 근무하고 밤에는 보이지 않던데?
- 실은 고등학교 2학년 말에 중퇴하여 검정고시 준비하고 있어요. 대입 검정고시 시험에 통과하면 야간대학에 들어가려고요!
- 그랬군요, 실은 내가 대학 2학년인데, 군대 제대해서 복학했거든, 2학기 준비하고 있어, 나도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나 할까?
청년은 진희를 바라보며 대답을 기다렸다. 진희는 한참 머뭇거리다가 입을 뗐다.
- 그러셨어요, 그런데 오빤 이름이 뭐예요?
- 네 이름은 윤석이야! 손윤석!
진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크고 약간 거무스름한 얼굴에 건장한 체구, 믿음직한 커다란 윤석의 손이 진희를 향해 내밀어졌다.
- 반가워요, 윤석 오빠! 내가 선임이니 사장님을 만나게 해 드리지요, 사장님도 윤석 오빠 맘에 들어할 거예요.
진희는 편의점 진열장을 닦으며 물건들을 정리하였다. 윤석이 다가와 거들어주고 '어깨를 툭 치며' 멀어져 갔다. 여사장이 그들을 바라보며 말을 건넸다.
- 윤석 씨, 지금은 근무시간이나 오버타임이 아니니 시간 임박한 삼각김밥 받고 싶으면 진희한테 달라고 해야 해?”
여 사장은 웃으면서 말을 걸더니 밖으로 나갔다.
진희는 귀염 늑대와의 즐거운 기억을 지우기 위해 열심히 일하며 시간과의 전쟁 중이었다. 진열장에서 귀염 늑대의 맑은 웃음이 터져 나오고 같이 만났을 때 추운 겨울에 컵라면을 먹던 날들이 영화의 필름처럼 넘어가고 있었다. 힘들고 지쳤을 때 늪지대에서 만난 수호신과 같은 귀염 늑대를 잊으려고 하면 할수록 추억이 되살아나고 기억의 파편들이 진희를 괴롭혔다. 진희의 귓가에 환청처럼 그의 목소리가 맴돌았다.
편의점 바닥을 밀대로 닦고 또 닦았다, 테이블도 닦고며 부산을 떤다. 대학가 앞, 한가한 시간에는 암기과목을 정리한 작은 수첩에 적힌 것을 달달 외우고 있는 진희다. 길 가는 행인의 그림자에서 귀염 늑대를 찾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정신을 가다듬어 차가운 물로 세수하며 거울에 비친 얼굴을 바라보았다.
‘진희야, 정신 차려! 아직도 못 잊으면 어쩌려고? 그 아저씨는 벌써 널 잊었을 걸, 이 바보야!’
진희는 악몽에서 조금씩 회복되어 가고 있었다. '내가 꼭 공부하여 대입 검정고시 합격을 하고 내 후년에는
법대에 들어갈 거야, 그래서 힘이 없고 그늘진 곳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을 대변하는 입과 귀가 될 테야?’
진희는 다짐하고 또 다짐하였다.
진희가 모르는 과목은 윤석이 가르쳐 주었다. 윤석과 같은 편의점에 근무한다. 근무 시간을 다르지만 서로 그날 있었던 일과 시간이 되면 빼야 할 물건들을 인수인계를 해주며 잘 관리했다. 일 년 후에는 원하던 대학에 들어가서 공부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중요한 것을 작은 수첩에 적어 외우고 다녔다.
아담과 이브가 살아왔다. 에덴동산에서 실오라기조차 걸치지 않는 알몸으로 다니고 있다. 동산에 있는 있을 따먹지 말라고 했는데 뱀에 꼬드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