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유정 이숙한
베이비부머 시대에 태어난 내 눈에는 MG세대가 뭐든 완벽하게 잘하려고 애쓰는 것이 역력히 보인다.
유치원 아이 돌봄 일력으로 일하면서 느끼는 게 많다. 유아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와서 수학이나 과학, 언어 등. 여러 학문을 접하고 친구들과 놀며 더불어 사는 사회생활을 배우고 익힌다.
지금의 유아들은 자기 의사대로 표현을 하며 존중을 받고 있다. 요즘 아이들은 입기 싫은 옷은 입지 않아도 되고 먹기 것은 먹지 않아도 된다. 베이비부머에 태어난 우리 세대는 내 의견을 존중받지 않고 유교사상에 따른 어른을 공경하며 순종해야 하는 것으로 배웠으므로 내 의견을 내세우지 못했다. 어른들 의견에 따라야 했으며 내 의견을 말하면 야단을 맞았다. 우리 집은 할아버지가 가장이라 아버지도 할아버지의 의견에 따라야 했다.
낮시간 육아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엄마를 대신해 준다. 응가나 쉬를 하면 기저귀를 갈아주고 엄마가 싸 보낸 이불에서 낮잠을 자게 해 주고 4세가 되면 똥을 눕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생후 8개월 이하 된 아이들도 어린이집에서 교사들의 보살핌을 받고 있다. 교사들이 엄마의 역할을 대신하는 셈이다. 기저귀를 갈아주고 아이와 눈을 맞추며 대화를 나누고 균형 있는 간식과 밥도 제공해 준다.
베이비부머 세대인 우리는 시골에 살아 엄마들이 농사짓느라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젖을 먹을 때는 할머니가 아기를 업고 논이나 밭으로 가서 엄마 젖을 먹게 해 줬다. 그땐 천 기저귀라서 4개월부터 쉬를 가르쳤다. 돌 전에 소변을 가리는 아이들이 많았다. 우리 세대가 아이를 키울 때는 5~6개월에 쉬를 가르쳤다. 아이가 돌이 되기 전에 대대분 소변을 가렸다. 80년대 아기들은 이동 변기에 앉아 응가를 하게 했다.
유아들은 어린이집에서 점심을 먹고 놀다 정해진 시간에 낮잠을 잔다. 낮잠을 자면서 엄마 꿈을 꾸었는지 자고 일어나면 칭얼거리는 아이도 더러 있다. 잘 적응하는 아이도 있지만 자고 일어났을 때 엄마가 옆에 없으면 막막함이 몰려왔을 것이다. 유아들은 은허탈함으로 우는 거 같다. 엄마에게 사랑과 응석을 받고 자랄 나이인데 현실은 아니다. 다들 잘 적응하는데 간혹 우는 아이가 더러 있다.
유아나 6~7세 어린이들은 아침 8시 반에서 오후 세네 시까지 어린이집에 있다. 유아들도 어린이집에 있을 때는 정해진 규칙에 따라야 하니 긴장하는 것 같다. 참으로 안쓰럽다.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독립심을 배운다.
부모들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직장에 출근해서 바쁘고 힘든 한 주를 보낸다. 주말과 휴일에는 늦잠을 자며 쉬고 싶을 것이다. 젊은 아빠들이 존경스럽다. 일주일 동안 일하느라 힘들 텐데 아이들과 놀아주고 가사 도나 눠서 하는 것을 보니 그 모습이 사랑스럽다. 한 주 내 떨어져 있는 아이와 놀아주려고 키즈카페나 물놀이도 가고 연극이나 뮤지컬을 보러 가고 멀리 여행을 가기도 한다.
주말 육아가 힘들다는 말이 생겼다. 일하는 엄마 아빠 마음이 충분히 이해 간다. 주말이면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가져온 이불과 여벌의 옷을 세탁하고 컵이나 치약 같은 소모품이나 기저귀나 옷을 챙겨야 하니 부산한 주말이다. 엄마 아빠도 산업전선에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떨어지지 않는 아이를 떼어놓고 마음 조이며 하루를 보낸다. 또한 힘듦 가운데 진한 행복을 맛본다. 베이비부머 시대엔 살은 우리세대도 그랬다.
둘이 알콩달콩 살며 해외여행이나 국내 여행을 다니며 인생을 즐기며 살고 싶은 마음 충분히 이해가 간다.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적인 욕구이다. 하지만 어느 것이 정답이라고 할 수 없다. 정답은 없다. 선택은 내가 하는 것일 뿐! 아무도 내 인생이 끼어들 수 없다. 내 인생은 오롯이 내가 책임지는 방식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