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편소설 연재] < 사랑을 위하여 > 유정 이숙한
그가 여자에게 관심이 없는 건지, 자신이 매력이 없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시선을 다른 곳에 두고 있었다. 박양은 화가 났다. 그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는 시선은 다른 곳에 두고 속삭이듯 묻는다.
- 왜, 생각나, 나 보고 기분 좀 맞춰달라고? 여성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 남자의 의무이니
공주님이 원하시면 기꺼이 이 한 몸 봉사해 드리겠습니다.”
바다가 보이는 빨간 집으로 갔다. 겉치레는 벗어던지고 더운물이 흐르는 샤워기에 바디 비누를 바르고 닦아내는 여자. 남자는 여체의 향기를 흡입하듯이 맡았다. 여자는 놀랐다. 보기에 시시해 보이는 남자, 다방에 오면 호구처럼 커피나 여러 잔 사는 바보 같은 사내가 여자의 몸이 원하는 방향을 정확히 짚어내고 있었다.
어찌 된 일인가, 무식쟁이 촌놈이 여자를 능수능란하게 갖고 노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온몸이 나른해진 여자. 여자도 남자의 몸에 바디 비누를 바르고 온몸을 훑어내 린다. 그리고 예민한 곳을 만져주었다. 남자는 등뒤에서 몸을 밀착하여 여자를 끌어안는다. 가슴을 만져주며 온몸을 탐닉한다. 여자는 온몸의 세포들이 일제히 일어났다. 남자는 바다 저 밑 해안의 해초가 우거진 바위 속으로 들어갔다. 바위 속에 숨은 문어는 무아지경의 숲에 빠져들었다.
찬수는 서희의 집에 가려다 차비를 하다 그만둔다. 승용차에 몸을 싣고 시동을 걸었다. 읍내에 도착했다.
‘보리수 다방’의 김 양이 달려왔다. 그는 김 양에게 차에 타라고 손짓했다. 김 양은 손에 든 쟁반을 뒷좌석에 내려놓고 조수석에 오르며 그에게 눈인사한다. 찬수는 기어를 넣고 읍내를 빠져나와 우회전한다. 낙조로 유명한 궁평항으로 갔다.
포구에는 갈매기들이 흐느적거리며 날갯짓을 한다. 서로 새우깡을 받아먹겠다며 몰려들었고 특유의 울음소리를 낸다. 갈매기들은 그를 조롱하듯 ‘바보, 바보’하며 허공으로 떠올랐다 땅으로 내려앉는다.
한 달 전 박 양과 함께 왔던 바다다. 태숙은 그의 손을 잡아끌고 바닷속으로 떨어지는 해를 바라본다.
바다에 빠진 태양, 저녁 하늘은 핏빛으로 물들었다. 태숙은 찬수에게 기대며 팔짱을 끼고
- 오빠야, 비릿한 바다 냄새 좋다? 붉은 해가 바다에 숨어들었어. 붉게 물든 노을이 너무 멋지다. 새우깡을 먹으러 몰려드는 갈매기들이 부럽다! 나도 갈매기였다면…!”
태숙은 노을이 지는 수평선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 저 넓은 바다를 날아다니는 갈매기들은 머무는 곳이 있겠지!”
태숙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두고 온 고향, 토굴 새우젓으로 유명한 광천 항이 떠오른다.
찬수는 태숙의 어깨를 가볍게 안으며 토닥거렸다. 태숙은 그의 팔짱을 끼고 걸어간다. 썰물로 드러난 갯벌을 바쁘게 기어 다니는 작은 게 들은 갈매기 소리에 화들짝 놀라 모래꽃 속으로 숨어든다. 바다 위 테크 길을 걸어 궁평 소나무 숲으로 갔다. 비릿한 바다 내음과 솔향이 어우러져 상큼하다. 태숙이 그의 손을 잡고 백사장으로 내려갔다. 찬수는 소라 껍데기를 주워서 태숙에게 건네주었다.
태숙은 소라 껍데기에서 들려오는 바람 소리를 들으니 가슴이 울컥한다. 아련히 떠오르는 추억의 퍼즐들이 펼쳐졌다. 어부인 아버지와 엄마랑 행복했던 바닷가. 엄마의 손을 잡고 포구로 아버지를 마중 나가는 앳된 소녀. 아빠가 탄 배가 실종되자 넋을 잃고 포구에 앉아 넋 놓고 앉아 아빠를 기다리던 엄마. 여러 날을 식음을 전폐한 엄마는 동공이 풀렸다. 며칠 후 엄마는 돈을 벌겠다고 뭍으로 떠났다.
홀로 남겨진 태숙은 엄마의 남동생인 외삼촌 집에서 동생들을 돌봐주며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스무 살이 되자 엄마를 찾겠다고 서울에 상경했다. 이곳저곳 바람처럼 떠돌다 엄마의 흔적을 찾지 못했다. 삐끼에게 사기를 당해 흘러온 곳이 읍내 다방이었다. 물설고 낯선 이곳이다. 태숙은 아버지를 닮아 무뚝뚝한 찬수가 좋았다.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백사장에 유령처럼 서 있는 폐유람선으로 성큼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