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함을 세지 않는 삶, 내가 가진 충분함을 사랑하는 삶
나는 누리는 모든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부족한 것에 불평하는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더 많이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부족한 것은 채워야 한다고 믿었다.
그런 내 삶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온 사건이 있었다.
라오스에서 가이드로 일하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3박 5일의 투어를 진행하고 있었다.
방비엥의 블루라군. 뜨거운 태양 아래, 물빛이 반짝이던 그곳에서 손님들과 점심을 먹고 있었다.
그때였다. 작은 손들이 바삐 움직이며 여행객들이 남긴 음식과 쓰레기더미를 뒤지는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몽족 아이들이었다. 한 아이가 구겨진 플라스틱 컵라면 용기를 손에 들고 강가로 갔다. 물에 젖은 작은 손으로 그것을 씻으며 , 마치 소꿉놀이를 하듯 해맑게 웃고 있었다. 하지만, 그 모습은 단순한 놀이가 아니었다. 그 아이는 쓰레기 더미 속에서 쓸만한 것을 찾아 다시 사용하려고 하고 있었다. 그 순간, 아이가 무심코 내뱉은 한마디가 내 귓가에 꽂혔다.
"아직 쓸만한 걸 왜 버려요?"
그 한 문장이 내 마음을 뒤흔들었다.
아이들의 행동은 처연했지만, 그들의 얼굴은 이상할 만큼 평온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날 이후, 투어를 진행하면서도 내 머릿속은 계속 그 장면에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나는 처음으로 내 삶을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태국에서 처음 가이드를 할 때, 그리고 라오스로 첫 파견을 오게 되었을 때, 회사 선배들은 하나같이 나를 만류했다.
"라오스? 거기서 어떻게 살려고?
너 재미도 없고 고립될 거야."
"여자가 라오스에서 산다고? 절대 쉽지 않을 거야."
70명의 가이드 중에서 내 라오스행을 축하해 주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모두들 내가 회사에서 '팽' 당한 것이라고, 버려지는 카드라고 했다.
라오스에 도착했을 때, 나 역시 '과연 내가 여기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열악한 환경. 태국에서도, 한국에서도 본 적 없는 휑한 시골이 펼쳐져 있었다. 남자 가이드들은 술과 밤 문화가 있으면 어디서든 적응한다고 했지만, 나에게 라오스의 첫인상은 생소함을 넘어선 낯섦이었다.
끝없이 이어진 황톳길,
도로라고 해도 떼 지어 다니는 소들,
제대로 된 대중교통이 없는 현실.
시장을 가도, 마치 대하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50~60녀대 한국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냉장고도 없이 나무판 위에 생고기를 올려놓고 파는 풍경, 깨끗하게 정리된 진열장이 아닌 흙바닥 위에서 거래되는 생필품들.
그래도, 그러한 라오스에도 내가 머무르게 만든 이유가 있었다.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의 소탈함과 소박함, 어디서나 감사하고 기뻐하며 작은 일에도 함께 울고 웃으며 나누는 문화. 라오스 사람들은 말이 통하지 않아도 공감했고, 단순한 친절이 아니라 진심이 담긴 따뜻함으로 다가왔다.
한국에서는 같은 아파트 주민과 엘리베이터에서 눈이 마주쳐도 어색하게 외면하기 일쑤였지만, 라오스에서는 모르는 사람과도 웃으며 눈을 맞추고 인사를 건넬 수 있었다.
라오스에서의 3개월이 지나, 나는 방콕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라오스에 남기로 했다.
라오스에서, 나는 나를 다시 배우고 있었다.
라오스로 오기 전, 한국에서의 나는 소비의 굴레 속에서 살고 있었다. 독일제 스테인리스 프라이팬, 고급 티 스푼, 수십만 원짜리 찻잔까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더 좋은 것'을 위해 돈을 썼다. 전문 셰프도 아니면서 비싼 주방 용품을 사모으고, 작은 찻잔 하나에도 몇십만 원을 기꺼이 지불했다. 물건을 소유하는 것이 나를 증명하는 일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라오스에서 만난 아이들의 모습이 내 소비 습관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내게는 몇십만 원을 주고 산 찻잔이 '필수품'이었지만 그 아이들에게는 버려진 플라스틱 컵라면 용기가 '아직 쓸만한 것'이었다.
무엇이 진짜 '필요한 것'일까?
그날 이후, 나는 '당연하게 누리던 것들'에 대해 처음으로 깊이 생각했다.
몽족 아이들과의 짧은 만남은 나를 바꾸어 놓았다.
그들의 태도를 보며, 나는 내 삶을 돌아보았다.
나는 얼마나 많은 것을 누리면서도,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던가?
나는 얼마나 많은 것을 원하면서도, 정작 가진 것의 소중함을 몰랐던가?"
그날 이후, 나는 '가진 것'에 감사하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하지만 그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가이드로서 여행을 대하는 태도도 완전히 바뀌었다. 이전까지 나는 "좋은 곳을 보여주고, 설명해 주고, 편안한 여행을 제공하는 것"이 가이드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경험을 통해 깨달았다.
"여행이란, 단순히 새로운 곳을 가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과정이다."
손님들에게 여행을 안내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여행을 통해 무엇을 느끼는가?"였다. 어떤 순간은 관광지가 아니라,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었다. 가이드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은, 그 여행이 '단순한 투어'로 끝나지 않도록 조금 더 깊이 있는 시선을 건네주는 것이 아닐까.
한국으로 돌아온 뒤, 코로나라는 새로운 현실을 마주하면서 그 깨달음은 더욱 깊어졌다. 손가락 하나로 모든 것이 배달되는 편리함 속에서 나는 종종 여전히 불평했고, 또다시 소비의 유혹에 빠졌다.
하지만, 이제는 한 번 더 생각하게 되었다.
장바구니에 담긴 물건을 보면서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게 정말 필요한가?"
"이 물건이 없어도 괜찮은가?"
"이것이 내 삶을 더 풍요롭게 해 줄 것인가?"
"이 물건을 대체할 것은 지금 없는가?"
예전 같았으면 고민도 없이 결제 버튼을 눌렀겠지만, 지금은 다시 한번 생각한다. 이제 소비는 단순한 쇼핑이 아니라, 내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선택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것만으로 충분하다."
그날의 깨달음은 내 삶의 방향을 바꾸는 새로운 나침반이 되었다.
더 적게 소비하고, 더 많이 감사하며
가진 것 안에서 행복을 발견하는 삶.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 애쓰기보다,
지금 내 곁에 있는 것들의 소중함을 깨닫는 삶.
나는 이제 , 부족함을 세지 않는다.
대신, 내가 가진 충분함을 사랑하며 살아간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라오스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예약했다.
오는 2월 24일, 나는 다시 라오스로 출국한다.
지난 5년 동안 여러 차례 라오스로 돌아오라는 권유가 있었지만, 끝끝내 한국을 고집했다.
그러다 결국, 다시 떠나기로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라오스에 대한 글을 쓰고 있는데, 마침내 라오스로 돌아가는 상황이 되었다.
다음 글은 아마도 한국이 아니라. 라오스에서 쓰게 될 것 같다.
다시 마주하는 라오스의 풍경과 사람들.
여전히 그대로 일까? 아니면, 변해 있을까?
그리고 나는 그곳에서, 또 어떤 배움을 얻게 될까?
몇 년 만에 다시 찾는 라오스.
소박한 웃음과 따뜻한 인사를 다시 만날 생각에,
벌써부터 가슴이 벅차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