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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은 불안을 고요히 만든다

언어와 말에 통제당하지 않기 위해

by 에이브 Ave


침묵은 언제나 두렵다. 나의 생각과 결정에 대한 확신이 없는 나는 침묵이 언제나 두렵다. 밴드 혁오의 ‘톰보이’에 나오는 가사처럼, 행복하지만 불안한 이유는 폭풍전 바다는 고요하기 때문이다. 침묵 후에 몰아치듯 찾아올 결과에 대한 책임이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


시간이 흘러 어렸던 내가 어른이 되자 누군가의 침묵에 나의 불안은 분노로 바뀌었다. 두려움과 불안에 잠식되어 침묵에 대한 나의 오해는 더욱 더 커져갔고 그렇게 나는 침묵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나의 두려움과 불안으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안겨주었다. 내가 불안하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을 언어로 통제했고 그렇게 나도 언어라는 틀 안에 갇혀버렸다. 그러나 곧 나는 내가 그토록 두려워했던 침묵이 나의 불안을 고요히 잠재울수도 있다는걸 깨달았다.


이때 잠시 내가 읽은 엔도 슈사쿠의 책 ‘침묵’에 대한 나의 견해를 피력하자면, 나는 이 책이 신의 침묵에 대한 두려움을 담은 책이 아니라 인간의 불안한 정신세계를 담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로드리고 신부는 신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하고 답을 구하지만 정작 그는 신의 답변을 듣지 못한다. 적어도 로드리고 신부 본인은 신이 자신에게 침묵으로 일관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믿었던 신도의 배신으로 인해 일본 군인에게 잡혀가고 온갖 고문을 받는다. 그의 심리상태는 무척이나 불안정했을 것이다. 배신과 고문으로 인한 극심한 트라우마와 고문으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가 그의 불안한 심리를 잘 드러내고 있다. 로드리고 신부는 자신이 신에게 버림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곧이어 모국에서 로드리고 신부의 신앙에 큰 귀감이 되었던 신부가 사실은 일본 정부의 편에 서서 신을 부정하고 있다는걸 알게된 로드리고 신부는 큰 충격에 비틀거리며 복도를 걷는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로드리고 신부는 결국 일본 정부의 편에 서게된다.


내가 만약 로드리고 신부였다면 어땠을까? 분명 나도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그처럼 신을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책을 찬찬히 끝까지 읽어보면 마지막에 로드리고 신부가 자신을 배신한 신도의 순교를 전해듣는 장면이 나온다. 책을 읽던 나는 정말 깜짝 놀랐다. 전혀 생각지 못한 인물이 신의 침묵을 대변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책은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으며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작품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내가 해석한 바와 같이 이 책은 인간의 불안한 정신세계를 담고있으면서도 신의 침묵에 대한 인간의 다양한 반응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로드리고는 신이 자신의 질문에 침묵으로 일관한다고 생각하지만 신의 입장에서는 어땠을까? 정말 로드리고의 물음에 침묵으로 일관했을까? 아니면 애타게 그를 부르는 신의 목소리를 로드리고 신부는 듣지 못했던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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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침묵은 정말 침묵인걸까? 나는 그동안 침묵은 파괴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내가 오해한 건 아닐까? 어쩌면 침묵은 아주 작은 목소리까지 듣기위한 성찰이 아닐까?

천주교에는 피정이라는 종교적 수련이 있다.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조용한 곳에서 침묵하며 마음의 소리를 듣고 신의 목소리를 듣는 수양이라고 한다. 침묵을 통해 그들은 스스로를 돌아보고 아주 작은 목소리와 세상의 소리들을 듣기위해 언어로 가득찬 세상에서 한 걸음 물러나 바라본다. 마치 더 큰 목표를 위해 한 걸음 물러나 주변을 둘러보고 뒤돌아보는 것과 같다.


책에서 로드리고 신부는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야 신의 침묵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은 것 같다. 신의 침묵은 로드리고의 물음에 대한 무응답이 아닌 그의 질문에 귀기울이기 였다는 것을.



나는 그동안 누군가의 침묵, 특히 권위자의 침묵이 두렵게만 느껴졌는데 침묵의 진정한 의미와 의도를 이해하니 상대방의 침묵을 다르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침묵하는 것은 본인을 되돌아보고 상대방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위함이다.


책에 나온 신의 침묵도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위함이며 결국에는 로드리고 신부도 그리고 그를 고발한 신자도 침묵을 선택한다. 자기 자신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 그리고 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서 그들은 침묵한다. 그리고 침묵을 통해 불안으로 요동치던 그들의 마음이 안정을 되찾는다.


침묵은 불안을 고요히 잠재운다. 폭풍이 치는 바다에 내던져진 우리는 성난 파도에 이리저리 내쳐진다. 몸은 말을 듣지않고 파도에 떠밀려 끝이 보이지 않는 외로운 항해를 이어나가야한다.


하지만 파도에 몸을 맡기기 시작할 때, 우리는 마침내 파도의 이기적인 통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는 이제 파도가 우리의 몸을 이리저리 조종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의 몸을 파도에 맡기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침묵이 이와 같다. 침묵을 하기로 결정했을 때, 우리는 더 이상 ‘언어’와 ‘말’에 통제당하지 않고 본인 스스로를 돌아보고 불안을 매듭짓는다. 그렇게 침묵은 불안을 잠재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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