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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침묵은 언제나 두렵다

그대는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by 에이브 Ave Feb 11. 2025


        나는 침묵이 두려웠다. 내가 잘못했을 때, 누군가 내가 하는 행동이 잘못된 거라고 말해주지 않는 침묵이 두려웠고 혼나야 할 때 혼나지 않는 침묵이 두려웠다. 마치 폭풍우처럼 갑자기 덮쳐올 무언가가 두려운 것처럼 침묵은 나를 두렵게 만들었다. 언젠가는 혼날 것을, 언젠가는 알게 될 진실을 침묵이 덮어두었다가 내가 생각지 못할 때 갑자기 덮쳐올까 늘 불안했다. 


        침묵은 진실을 잠시 덮어둘뿐 언젠가는 터지는 시한폭탄과도 같다. 침묵은 하얀 거짓말처럼 진실을 거짓으로 바꾸지 않는다. 가까운 예로 친구의 가방이 예쁘지 않아도 배려 차원에서 예쁘다고 거짓말하는 것을 하얀 거짓말이다. 배려가 뒤에 깔려있지만 결국에는 거짓을 말하고 있다. 


        침묵은 그 무엇도 말하지 않는다. 진실도 거짓도 말하지 않고 말하고 싶지 않은 것도, 말하고 싶은 것도 모두 다 말하지 않는다. 침묵은 진실로도 거짓으로도 파도치지 않는 고요한 바다와 같다. 그렇기에 나에겐 침묵은 갑자기 모든 걸 다 들추어내며 찾아올 반갑지 않은 손님이었다.

 

        몇 년 전, 학교 과제로 ‘침묵’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일본 작가인 엔도 슈사쿠의 책으로 일본에 처음 천주교가 들어올 당시를 배경으로 쓴 책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숨죽이고 나도 똑같이 침묵을 경험했다. 그리고 나는 결정적으로 한 난관에 다 달았다. 책의 주인공과 감정이 동화되어 죄책감과 불안을 느꼈다. 

   

        만약 나의 선택으로 3명의 사람의 목숨이 달려있다면 내가 오늘 아침 샤워를 할지 말지 고민했던 것처럼 단순하게 선택할 수 있을까? 아니, 다시 되돌아가서 애초에 3명의 목숨이 왜 나의 선택에 달려있어야만 하는 걸까? 


        이 책에서는 순교의 모습이 많이 그려진다. 많은 사람들이 고문을 당하고 고통스럽게 죽음을 맞이한다. 주인공 신부 로드리고는 신을 전하기 위해 또는 죽음을 피하기 위해 이리저리 일본을 떠돌게 된다. 떠돌이 생활 중에서도 천주교 신도에 의해 고발을 당하기도 하는데 그렇게 붙잡힌 신부는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목숨을 내려놓을 것인지 아니면 일본 천황의 편에 설 것인지. 로드리고 신부는 고통 속에서 울부짖는다. 고문으로 상한 몸보다 그의 정신이 그를 더 괴롭게 만든다. 무엇이 그를 그토록 두렵게 만들고 있는 걸까? 로드리고 신부는 다가올 죽음이 두려웠던 걸까 아니면 신의 침묵이 두려웠던 걸까. 


        침묵은 나를 두렵게 만든다. 나의 선택에 대한 확신이 없는 상황에서 모두가 나의 선택에 침묵을 한다면, 더 나아가 내가 가장 믿고 의지하고 따르는 존재가 나의 선택에 침묵을 한다면 나는 로드리고 신부처럼 두려움과 불안에 휩싸일 것이다. 


        예를 들자면 2살 배기 아이의 세상에서 가장 큰 존재인 부모님이 만약 2살 배기가 하는 모든 행동에 침묵한다면 어떨까? 처음 걸음마를 배울 때에도 말을 배워야 할 때에도 침묵하고 아무런 대응도 반응도 없다면 2살 아이는 극심한 불안에 휩싸일 것이다. 뜨거운 물에 손을 데어 엉엉 울고 있는 아이에게 부모님이 침묵으로 응답한다면 아이는 화상 입어 아픈 손보다 두려움으로 인해 더 고통스러워할 것이다. 


        성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다. 만약 직장에서 부장님이 나의 보고서에 침묵한다면 어떨까. 보고서를 수정해야 할지 아니면 그대로 올려도 될지 우리는 고민하게 될 것이다. 단순히 보고서에 그치지 않고 몸이 너무 아파 찾아간 병원에서 검사한 뒤 의사가 진단을 내리지 않고 침묵한다면 어떨까? 지금 당장 아픈 몸보다 침묵에 대한 더 큰 두려움이 우리를 괴롭게 할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지금 우리의 인생에서 가장 큰 존재의 반응과 응답을 필요로 하고 그 존재의 침묵을 두려워한다. 


        누군가의 침묵으로 우리는 알 수 있다. 우리의 인생에서 큰 존재가 누구인지, 우리를 가장 불안하게 만드는 상황은 무엇인지, 두려움이 클 때 우리는 어떻게 행동하고 생각하는지, 우리는 선택할 때 무엇을 고려하여 선택하는지 알 수 있다. 


        앞서 말한 로드리고 신부의 선택에 3명의 목숨이 달려있는 상황에서 신부는 과연 어떤 선택을 내려야 했을까. 3명의 목숨을 포기하고 신을 선택해야 했을까, 3명의 목숨을 살리고 일본 천황의 편에 서야 했을까. 애초에 신과 일본 천황 사이로 편을 선택해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3명의 목숨을 살린다고 해서 어떻게 신을 포기한다고 볼 수 있는 걸까? 3명의 목숨에 대한 책임은 로드리고 신부에게 있는 걸까? 


        많은 질문을 하게 만든 책, ‘침묵’은 나에게 한 가지 답을 주었다. 누군가의 침묵이 두려운 이유는 우리가 우리의 선택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선택에 대한 확신을 원한다. 옳은 선택을 했다는 확신이 우리를 불안에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한다. 그러니 누군가의 침묵으로 우리는 우리를 알아야 한다. 우리가 왜 우리의 선택에 확신이 없는지, 확신을 갖기 위해 무엇을 찾고 있는지, 확신을 가진다면 우리는 어떻게 행동하는지. 우리 인생에서 큰 영향을 주고 있는 누군가가 주는 확신은 과연 옳은 확신인지. 우리가 믿고 따르는 누군가가 우리의 선택에 책임을 질 수 있는지. 나는 계속 생각하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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