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의 나래를 펼쳐라!
상상의 나래를 펼쳐라! 나는 오늘도 상상한다. 일어나지 않을 테지만 계속해서 상상한다. 하지만 혹시 모른다. 내가 상상한 일들이 현실이 될지 누가 알겠는가? 영화제목 중에 ‘윌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도 있지 않는가? 그렇게 상상을 하는 나는 오늘도 현실과는 조금 다른 삶을 살고 있다.
많은 사람들도 나처럼 상상을 하며 살아간다. 좋아하는 사람과 달콤한 연애를 하는 상상, 꿈꾸던 직장에 취업해 모두의 부러움을 사는 상상, 학교 축제 공연에서 노래를 멋지게 불러 모두가 환호하는 상상, 갖고 싶던 헤드폰을 장만하는 상상. 그리고 가끔 이러한 상상들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그렇기에 더더욱 사람들이 상상을 한다. 전혀 말도 안 되는 일은 아니니까. 그리고 상상은 우리의 현실에 동기를 부여한다. 우리는 짝사랑하는 상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열심히 꾸미거나 알바를 해서 갖고 싶은 헤드폰을 사기 위해 돈을 모은다. 그리고 우리의 상상에 조금 더 가깝게 다가간다.
어린아이일 적에 나는 항상 자기 전, 온갖 상상을 하며 꿈에 나의 상상이 반영되기를 꿈꾸었다. 어른이 된 나의 모습을 상상하기도 했고 미래의 집을 그리며 흡족한 미소를 지어보기도 했다. 다음 날, 학교에 가서 무엇을 할지 뭐라고 이야기할지도 미리 상상을 해보기도 했고 특히 좋아하는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는 상상도 했다. 롯데월드나 애버랜드로 소풍을 가는 날이면 무엇을 입을까 상상했고 오늘 하루 중 바꾸기 원하는 한 부분을 생각하며 다시 그때로 돌아가 다른 선택을 하는 상상도 했었다. 이 경우 창피하거나 부끄러운 일들 위주로 삭제하는 상상을 주로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재미있는 상상을 하며 이 상상이 꿈에도 나오기를 기대하며 상상을 마쳤다.
한때 내가 즐겨하던 상상은 고등학생이 된 내가 혼자 아기자기한 주택에서 자취를 하는 상상이었다. 물론 이 상상의 재료는 즐겨 읽던 순정만화책에서 빌려온 것이었다. 그때 읽었던 만화 내용은 대략 아기자기한 주택에 사는 여고생이 소꿉친구와 사랑에 빠지는 그런 내용이었는데 어렸던 나는 이 만화로 인해 소꿉친구를 간절히 원하게 되었다. 만화에서 여고생이 살던 주택을 살짝 고쳐 나만의 주택을 만들었고 동글뱅이 안경을 쓰고 올림머리를 한 내가 소꿉친구와 같이 등교하는 상상도 했다. 나의 상상은 장르 불문하고 나에게 큰 울림을 준 이야기를 기반해 만들어졌는데 하루는 ‘시간을 달리는 소녀’ 영화를 보고 일본 배경으로 상상을 하기도 했고 그들의 소소한 일상을 꿈꿨다. 나는 하루를 상상으로 시작해 상상으로 끝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상상에 파묻혀 살았다. 그래서 가끔 어른들은 나를 ‘구름 위를 걷는 아이’라고 표현하기도 했고 나도 내가 혹시 망상을 하는 건 아닐까 걱정하기도 했다. 그래도 상상을 멈출 수는 없었다.
몇 년 전, MBTI 가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친구 따라 해 본 MBTI 테스트에서 내 MBTI 중에 Intuition을 뜻하는 직관이 나왔고 현재보다는 미래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설명에 몹시 놀랐다. 나는 그동안 내가 소설책, 동화책을 많이 읽어서 상상을 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만이 내가 상상하는 이유가 아니란 걸 알게 되자 마음이 놓였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와 과거의 경험을 기반으로 나는 항상 ‘미래’를 상상했다. 과거를 추억하는 경우에도 미래를 상상하기 위해 했고 현재의 불안함과 걱정들도 미래에 대한 상상으로 없애기도 했다. MBTI 테스트 이후에 나는 나의 상상이 현실이 되도록 상상하고 또 상상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실은 내가 꿈꾸었던 대로, 상상했던 대로 되지 않았다. 힘든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며 많이 울었고 막막한 현실에서 도망치기 위해 상상을 방패 삼았다. 이제는 고등학교가 아닌 대학교를 상상하며 미래에는 더 나아질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연약한 고등학생이 아니라 독립적인 어른이 되기를 꿈꾸었다. 그리고 대학생이 되었다. 대학생이 되어도 나는 내가 상상했던 대로 독립적이지 않고 멋있지 않고 보잘것없었다. 그렇다면 혹시 계속해서 내가 미래만 상상하는 이유가 현실에는 기대할 것이 없기 때문인 걸까? 현실은 엉망진창이기에 미래 뒤에 숨으려고 발버둥 치려 했던 상상이었던 걸까? 나는 그렇게 나의 삶을 무책임하게 내버려 두고 있었던 걸까?
그렇지 않다. 사실 나의 상상은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나만 몰랐을 뿐이다. 적어도 상상에 근접해지고 있다. 내가 생각한 형태와는 조금 다르지만 그래도 상상의 산물은 분명 있었다. 내가 멈추지 않고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를 꿈꿀 때, 나의 현실은 나의 상상과 나란히 한다. 초등학생 시절, 어른이 된 내가 동글뱅이 안경을 쓰고 올림머리를 한 상상을 했던 것이 실제로 이루어졌고 가족들 품을 떠난 나는 독립적인 어른이 되었다. 나조차도 모르게 상상은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상상한다. 상상에서 현실로 현실에서 미래로 나는 계속 나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