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빙점 말고 소설 빙점 - 미우라 아야코를 추모하며
어린 시절 부자가 아니었는데도, 부자인 줄 알고 살았다.
우리 집은 이것저것 파는 작은 가게를 했는데, "엄마 100원만" 하면, 엄마는 늘 돈통에서 100원을 꺼내 주곤 하셨다. 1980년대였으니 그 당시 100원으로 살 수 있는 것들은 많았다. 50원짜리 아이스크림도 제법 있었고, 호떡 2개에 100 원하던 때였다. 어쨌든 난 돈 걱정은 하지 않았다.
올림픽이 있었던 1988년의 2월 어느 날. 우리 집은 망했다. 망한다는 표현은 기업 사장쯤이나 되는 사람이 부도나거나 할 때 쓰는 표현이지만, 아직까지 전세 살던 우리 집이었음에도 난 지금도 그때 우리 집은 망했었지,라고 얘기한다. 어린 나이여서 왜 그런 일들이 일어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빚쟁이들이 돈을 달라 난리를 치고 엄마는 돈을 벌어오겠다며 집을 나가려 했었다. 아마도 엄마의 어떤 잘못 때문이었던 듯하다. 그 당시 엄마는 빚쟁이들보다 아빠의 눈치를 더 살폈던 게 기억난다.
그렇게 우리는 어느 산동네로 야반도주는 아니지만, 새벽이사를 하게 되었다.
대문에 들어서면 수많은 쪽방이 있는 달동네 슬래브 집이었다. 대부분은 혼자 사는 여공들이 많았던 것 같고, 우리 집은 그중 2개의 방에서 살았다. 이미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연속된 두 개의 방을 얻지 못하고 부모님의 방과 우리 4남매의 방은 멀리 떨어져 있었다. 나는 방황했다. 수업료를 내지 못해 학교에서 시달리기 일쑤였고, 일주일 용돈, 아니 한 달 용돈은 100원도 채 안되었으므로 친구들 만나는 것도 피했다. 한창 사춘기였던 여중생이 할 수 있는 건 매일 부모를 원망하는 것뿐. 오빠와 동생들은 TV가 있는 부모님 방에서 밤늦게까지 있었고, 난 마음 둘 곳을 몰라 혼자 외딴 방에 처박혀 일기를 쓰고, 라디오를 듣는 게 일상이었다.
그렇게 외딴 방에서 이삿짐을 들춰보다가 '빙점'을 만나게 되었다.
가로도 아니고 세로로 인쇄된 아주 오래된, 옛날 책이었다. 표지 제목도 한자로 쓰여 있었다. 아빠의 이삿짐 보따리 속에서 발견된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쫓겨나듯 가는 이사 중에 아빠는 그 책을 왜 버리지 않았을까 의문이 들기도 한다. 어쨌든 세로로 된 등장인물을 읽으면서 호기심이 갔다. 새엄마 밑에서 구박받으며 자라고 있을 요꼬의 인생보다는 내가 낫지 않을까, 위안을 받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니 어쩌면 이 현실을 잊게 해 줄 만한 또 다른 세계가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또 다른 친구를 만나듯 빙점을 읽었다. 두꺼운 4권짜리 빙점을 이틀 만에 다 읽었다. 읽고 또 읽었다. 학교에 가져가서도 읽었다. 오늘은 1권을 읽고 싶은 날, 2권을 읽고 싶은 날....그렇게 날마다 빙점을 읽었다. 언젠가 만화가 이현세의 인생의 책 중에 빙점이 소개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캐릭터 표현이 살아 있다고 했다. 내가 빙점에 빠지게 된 것이 그래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살아있는 등장인물들. 빙점의 등장인물들이 외롭던 내 인생들을 채워주는 친구들 같았다. 요꼬에게 부끄럽지 않은 친구가 되고 싶어서 엇나가지 않으려고, 공부를 놓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썼고, 내 추악한 이기적인 모습을 나쓰에에게서 보기도 했다. 또 다쓰꼬처럼 강인한 여자가 되고 싶었고, 도루나 기다 하라 같은 내 짝이 언젠가 나타나길 기다려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1999년 10월 밤 어느 날, 뉴스에서 미우라 아야꼬의 사망 소식이 나왔다. 그때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여러 직장을 전전하며 프리랜서 비슷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야근 중에 그녀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아 이젠 다 틀렸구나, 생전의 그녀를 만나 평생의 친구 요꼬를 만나게 해 주어 고마웠다고 인사하고 싶은 내 꿈을 이루는 건 이제 다 끝났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이라도 감사 인사를 전한다. 나의 삶은 빙점이 있어서 외롭지 않았다고. 그 힘들었던 시절에 나를 버티게 해 주어 고맙다고.
2018년 10월 가족들과 일본 아사히카와에 있는 미우라아야꼬 기념문학관을 찾아갔었다.
10월 12일. 난 아무 생각 없이 날짜를 잡은 거였는데, 정말 운명처럼 그날이 미우라 아야꼬 20주기 기념식이 있는 날이었다. 정말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왔다니 다들 반가워해 주었는데, 그중에서도 어떤 할아버지를 만났다. 짧은 일본어를 할 줄 알았던 딸의 통역으로는 미우라 아야꼬의 남편 친구라고 했다.
내가 얼마나 빙점을 사랑했는지 그분에게 전하고 싶었지만, 언어 소통이 안되니 그분이 아이들에게 주신 사탕 몇 알만 받아왔다.
번역기를 이용해 요꼬와 루리꼬가 누워있었던 비에이강변에 가보고 싶다고 하니 기념관 직원이 약도를 그려 설명해 주었다. 그 숲 속을 걸으며 '이곳에서 어린 시절 요꼬가 친구들과 놀고, 돌멩이에 어깨를 맞고, 눈발을 헤치며 우유 배달을 했겠구나....., 이 숲 어딘가에서 요꼬가 폭풍의 언덕을 읽고, 기다 하라를 만났겠구나' 생각하며 빙점의 한 장면 한 장면들을 실제처럼 떠올리며 감회에 빠졌었다.
빙점의 모든 곳을 가고 싶어 했던 나를 배려해, 남편과 두 아이는 빙점 코스로 첫 해외여행을 해 주었다.
둘째 날은 요꼬가 다녔던 홋카이도 대학을 걸으며 요꼬가 카레라이스를 먹었던 학생회관과 클라크 박사 동상 앞에서 사진을 찍고, 요꼬와 다쓰야가 처음 만났을 황벽나무가 어디 있나 찾아보기도 했다. 셋째 날은 요꼬의 친엄마가 살던 오타루 거리를 걸으며, 게이꼬가 있었을 만한 생선 도매상은 어디일까 쓸데없는 생각을 해 보기도 했다.
홋카이도 구석구석 모든 곳을 알아보고 예매하고 여행 설계를 해준 남편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요꼬의 흔적이 있는 곳곳들을 걷는 것은 요꼬와 느릿한 악수를 하는 느낌이었다.
나는 요꼬를 만나고 왔다. 내 인생 속에서 나를 이끌어준 요꼬. 고맙다. 반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