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의 내가 바라보는 부모님의 모습은 정말 완벽한 그대로였다. 내가 못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완전한 존재처럼 느꼈던 나의 어린 시절. 그러나 점점 나이가 들며 엄마 아빠는 모든 것을 잘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신이 아니라 사람이니까.
아이에게 양육자는 큰 존재이다. 아이는 스스로 보호할 수 없기에 보호자가 방패의 역할을 한다. 그래서 아이는 양육자를 아주 든든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초등학생 시절, 방학 과제물로 부모님의 그림을 제출해야 했다. 부모님께 말씀드리자, 엄마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셨다.
"나는 그림 잘 못 그려. 아빠한테 그려달라고 해."
엄마는 그림을 못 그린다며 스스로 인정을 하셨다. 어른이라면 그림을 다 잘 그리는 것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아빠에게 다가가 그림을 그려달라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아빠는 마치 컴퓨터에 입력한 것처럼 연필을 드는 순간부터 종이에 슥슥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하셨다. 로봇 태권 브이가 순식간에 완성되었다. 아빠는 태권도를 좋아하셨는데, 만화 캐릭터 중에서는 태권 브이를 좋아했다고 하셨다. 아빠가 로봇 태권브이를 그리신 이후부터 나는 아빠가 그림에 소질이 있으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시간이 점점 더 지나고 엄마의 키를 따라갈 무렵, 엄마는 나에게 질문을 하셨다. 컴퓨터 작업을 해야 하는데, 어려움을 마주한 그때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신 것이다. 엄마는 어른이라서 다 잘하실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엄마보다 컴퓨터 작업을 자주 하는 내가 그것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었다. 단축키 쓰는 방법, 프레젠테이션 잘 조작하는 방법, 한글 문서를 조작하는 방법 등 내가 생각했을 때는 쉬운 것들이 엄마에게는 어려운 일이 되었다.
생각보다 자주 부탁하는 엄마를 보며, 때로는 귀찮은 마음도 들었다.
"아니 이거 지난번에 알려드린 거잖아요. 그냥 이렇게 저렇게 하면 되는데요? 나 할 일 많아서 바빠. 이것만 알려주고 갈 거예요."
그러자 엄마가 한마디 하셨다.
"너는 엄마한테 이거 하나 알려주는 게 그렇게 힘드니?"
생각해 보니 그렇다. 엄마는 지금까지 나를 키우시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할애하셨는지 그때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하나의 일화가 있다. 한 남자아이가 하늘에 날아다니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의 아버지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 아버지는 하늘에 날아다니는 것에 대해 대답해주었다고 한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아이는 반복해서 같은 질문을 하였고, 아이의 아버지는 끊임없이 질문에 대해 대답해 주었다. 시간이 지나고 노인이 된 아버지가 하늘에 날아다니는 것에 대해 묻자 다 큰 아들이 이에 대해 대답하였다. 이어서 아버지는 똑같은 질문을 끊임없이 한다. 아들은 대답해 주다가 아버지에게 한 마디 한다.
"왜 똑같은 질문을 계속하세요? 대답해 드렸잖아요!"
그러자 아버지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네가 어렸을 때 이런 질문을 했잖니. 기억나?"
그때 그 아들은 깨달았다. 끊임없이 하는 질문에 대해 화를 한 번 내지 않고 끝까지 대답해 주던 아버지의 모습이 생각난 것이다.
엄마와의 대화에서 위와 같은 일화가 생각났다. 이거 하나 알려드리는 게 뭐가 그리 어렵다고 생색을 냈는지, 나도 모르게 내 모습이 부끄러워 보였다. 그 이후로는 엄마가 궁금하신 것을 나에게 물어보실 때, 끝까지 대답해 드린다. 속도를 따라가기 어렵다며 천천히 알려 달라고 요구하실 때에도, 속도에 맞추어 다시 알려 드리기도 한다.
아빠는 매일마다 "그거 어디 갔지?"라고 혼잣말로 말씀을 하신다. 아빠는 다 잘하실 줄 알았는데, 아빠는 물건을 잘 찾고 잘 두실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것이다. 아빠는 물건이 안 보일 때면 무조건 나를 찾으신다.
"세은아, 아빠 폰 어디 갔지?"
"세은아, 아빠 지갑 어디 갔지?"
"세은아, 아빠 벨트 어디 갔지?"
참 신기하게도, 내가 우리 집에서 물건을 잘 찾는다.
엄마든, 아빠든, 동생이든 "그거 어디 갔지?" 한 번이면, 나는 마치 명탐정 코난이 되어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 준다.
엄마 아빠는 어른이라서 무엇이든지 잘하실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럼에도 참 감사한 건, 내가 부모님을 도와드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쓸모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지하며 감사함으로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