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나는 공부보다 놀기를 좋아하는 뽀로로였다. 잘 놀고 공부도 잘하는 오빠를 보며, 벼락치기 방법을 따라한 적이 있다. 그런데 왜 오빠는 좋은 성적을 받고, 나는 그것의 반대인지 세상은 불공평하다고 느꼈다. 실컷 뛰어놀고 나중에 공부하는 오빠처럼 똑같이 했는데, 왜 결과는 다를까? 정말 억울해서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다. 사람마다 자기에게 맞는 공부 방법, 패턴이 다르다는 것을 잘 모르는 상태로 말이다.
초등학생 때까지는 놀면서 공부를 하거나 벼락치기 방법을 써도 어느 정도 성적이 잘 나왔다. 그런데 중학생이 되니 그 방법이 통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공부에 완전 흥미를 잃은 나는 수학을 포기한 사람, 수포자가 되었다. 살짝 부끄럽긴 하지만, 수학을 10점대를 맞은 적도 있다. 얼마나 심했으면 담임 선생님께서 계속 이렇게 하다가는 일반계 고등학교도 못 갈 수도 있다고 말씀하셨다. 엄마는 공부 안 하는 자식을 보며 가장 안타까워하고 답답해하셨다. 학원을 다니지 않고 스스로 공부해야 하지만, 혼자서 공부를 하지도 않는 나를 보며 엄마는 쾅쾅 가슴을 치셨다. 때로는 엄마의 눈치가 보였다. 나도 나에게 맞는 공부 방법을 몰랐기 때문에 외면한 걸지도 모른다. 엄마는 곰곰이 생각하시다가 이내 좋은 방법이 떠오르셨는지, 먼저 독서실에서 앉는 연습을 해보자고 제안하셨다. 엉덩이가 깃털처럼 가벼웠던 나에게 정말 크고 어렵게 느껴지는 도전이었다. 엄마는 눈썹이 한껏 시옷 모양이 된 나에게 독서실 가서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니 앉아만 있어 보라고 하셨다. 나는 엄마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첫날은 정말 앉아만 있었다. 딱딱한 의자는 제법 불편했고, 엉덩이는 뜨거운 솥뚜껑에 앉은 건지, 방방을 타고 있는 건지, 금방이라도 팝콘처럼 뛰어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조금만 더 참아보자, 조금만 더.'
마음속으로 '조금만 더'를 외쳤다. 그렇게 나는 하루, 이틀, 사흘, 나흘, 그 이상이 지나도록 매일마다 독서실에 가서 앉아 있는 연습을 하였다. 어느 정도 적응을 하니, 숙제를 들고 가서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시험 기간이 다가오자, 할 일을 계획할 수 있도록 플래너를 가져갔다. 그렇게 점점 나는 공부하는 법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엄마의 방법이 나에게 먹힌 것이다. 나는 점점 공부에 관심이 생겼다. 정말 눈곱만큼이지만, 성적도 제법 올랐다. 엄마 아빠 성에 안 차는 성적을 들이밀며, 그래도 오른 게 어디냐며 떵떵거리던 나. 내가 뿌듯하면 그것만으로도 되었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고 목표가 생겼다. 평균 90점 후반대로 마무리하고 학교를 졸업하자는 목표. 그렇게 나는 꾸준히 공부를 하기 시작했고, 틀리는 부분이나 잘 모르는 부분은 오답 노트를 하며 나만의 공부법을 찾아갔다. 결과적으로 나의 목표를 이루었다. 중학생 때의 이러한 도전은 고등학생, 대학생, 그리고 그 이후까지 이어지고 있다.
나는 고등학생 때 기독교 대안학교를 다녔다. 보통 사람들은 '대안학교'라고 하면 학교 부적응자, 공부 못하는 사람이 다닌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누구든지 갈 수 있다. 대안학교를 다니면서 공부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로 성장할 수 있도록 영향을 많이 받았다.
고등학교를 가니, 오빠 같은 친구가 있었다. 벼락치기를 해도 공부를 잘하는 머리가 타고난 친구. 시험공부를 할 때 친구를 라이벌로 두기보다, 과거의 나를 라이벌로 두니 오히려 공부가 더 잘 되었다. 무엇이든지 타인과 비교를 하기보다는 나 자신과 비교를 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다. 그렇게 나는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비교하며 도전을 하였다. 점점 공부에 재미를 붙인 나는 어려운 관문을 마주하였다. 그것은 바로 대학교 공부. 전공책은 베개로 해도 될 만큼 두꺼웠다. 이 많은 것을 어떻게 외우고 시험을 본담? 기독교 대안학교를 다녔던 나는 일반계 고등학교 과정을 겪어온 학생들과 함께 공부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다.
대학교 첫 시험. 시험 성적은 그냥 보통이었다. 내가 공부한 양만큼 빛을 발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나름 이만하면 되었지 하는 정도였다. 아쉬움이 가득했지만 수업을 재밌게 들었다. 교수님께서 질문하실 때마다 대답할 정도로 웃으며 그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시험공부든 과제물 수행이든 미리 하는 게 좋다는 선배들의 의견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받아들였다. 그렇게 밀리지 않고 기한 내에 미리 하려고 노력하였다. 이러한 좋은 습관 덕분에 빛을 발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귀찮을 때도 있었지만, '나'와의 약속을 끝까지 지켰다. 버스로 이동하는 자투리 시간도 아깝게 느껴져서, 시험 기간에는 버스 안에서 시험공부 자료를 읽어보기도 하였다. 학비를 보태고 싶었던 나는 열심히 한 결과, 전액 장학금을 받았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뿌듯했다. 새벽에 성적을 확인을 했는데 얼마나 기뻤는지 자는 엄마를 깨워서 좋은 소식을 알려 드렸다. 처음 장학금을 타던 그 시기가 나에게는 심적으로 가장 지친 상태였기 때문에, 마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것처럼 큰 기쁨을 주었다.
중학생 때의 작심삼일이 큰 기적을 만들었다. 이러한 모든 과정에서 엄마가 늘 함께 하셨다. 엄마의 말씀에 순종해서 다행이다.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신 신께 감사하다. 공부하는 것을 즐기고, 끝까지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심에 감사하다.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을 주심에 감사하다. 충분히 흔들릴 수 있는 상황에서도 내가 지금 해야 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 주시고, 마음의 중심을 잘 잡을 수 있도록 해주심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