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영아기에 애착 형성을 한다. 가장 가까운 양육자와 애착 형성이 잘 되지 않더라도, 주로 함께하는 사람에게 애착형성이 잘 된다면 큰 무리는 없다. 그러나 아무와도 애착 형성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불안정 애착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불안정 애착은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 많은 장애물을 지나갈 때 생각보다 큰 어려움을 준다.
어렸을 때 부모님은 맞벌이셔서 바쁘셨다. 그래서 친척들 집에서 있을 때가 꽤 있었다. 아침 일찍이나 저녁 늦게 엄마, 아빠를 볼 수 있었다. 그래도 정말 감사한 것은 늦은 밤에 만나도 따뜻하게 맞이해 주신 엄마 덕분에 나의 어린 시절을 잘 보낼 수 있었다. 간호사셨던 엄마는 퇴근하시자마자 반쯤 감긴 눈으로 책 한 권을 꼭 읽어주셨다.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재미있게 읽어주시는 엄마에게 다른 책도 읽어달라며 늘 앵콜 요청을 아끼지 않았다. 그로 인해 엄마는 늘 책을 읽어주시다가 잠드셨다. 그 당시에 동화책은 엄마의 수면제이지 않았을까?
자기주장이 강한 아빠와 나. 그래서 우리 둘은 잘 부딪힌다. 어떻게든 딸의 고집을 꺾어보겠다는 아빠와, 절대 지지 않겠다는 조그마한 여자아이.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 아빠에게 으르렁대었다. 생각과 의견을 존중해 달라며 더 크게 혼나더라도 버텼다. 어렸을 때는 스트레스를 준 날들이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차라리 무관심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넷플릭스의 프로그램인 <더 인플루언서>를 보게 되었다. 사람들의 관심을 많이 받는 유명인들이 나오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1 라운드에는 77명 중 40명 정도가 떨어져야 했다. 인플루언서들은 게임에서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좋아요와 싫어요를 눌러야 하는 첫 번째 미션을 수행하였다. 처음에 인플루언서들은 게임의 취지를 잘 파악하지 못하다가, 하나둘씩 알게 되자 싫어요라도 받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그렇게 게임의 결과는 좋아요와 싫어요 수를 합산해서 순위로 나뉘었다. 차라리 악플이라도 받으면 관심이라도 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옛날에 비해 요즘 들어 아동학대, 방치 살인 사건 등 아동과 관련된 끔찍한 일들이 많이 언급되고 있다. 어쩌면 과거도 많았지만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아동을 신체적, 물리적으로 폭력하는 기사를 마주할 때 화가 났다. 그런데 방임해서 사망한 아동들에 관련한 기사를 보면 마음이 너무 아프고 속상했다. 부모의 무관심이 아이를 죽음에까지 이르렀기 때문이다. 죽으면서까지 홀로 외로이 있었을 아이를 생각하니 속상한 마음이 들었다.
양육자의 부재는 아이에게 큰 영향을 준다. 아이가 처음으로 마주하는 작은 사회인 가정에서부터 인생을 살아가기 위한 방법을 배운다. 그런데 가정에서부터 보호나 보장을 받지 못하는 것보다 슬픈 일이 더 있을까? 어렸을 때 아빠와 큰 소리가 날 때, 때로는 그냥 혼자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트레스를 받는 이, 차라리 고아가 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뉴스 기사를 통해 사건사고를 접하니 내가 그동안 감사해야 할 일을 찾기보다 오히려 부정적인 쪽으로 생각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부모가 있음에, 관심을 주심에 감사함을 누려야 한다는 것을 잊은 상태로 말이다. 자그마한 소중한 나날들에 익숙해져서 그것을 잊고 살았던 것이다. 그렇게 오늘도 감사함을 충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