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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터면 오해할 뻔했네.

뒷산에 다녀온 이야기

by 이일삼


동네 뒷산에 올라갔다. 일단 산이라고 불리고는 있지만, 높이가 낮은 데다가 이렇다 할 특징도 없어 이름도 없고(있을 수도 있지만 일단 나는 모른다), 찾는 사람도 적은, 인기가 지독하게 없는 산이다.


오르는 길 옆으로는 중장비에 깎인듯한 바위와 그 틈으로 시냇물 닮은 비슷한 무언가 흐르고, 중턱쯤에는 저수지가 있다. 집에서 이 저수지까지가 살랑살랑 걸어서 왕복 한 시간쯤 걸리는데, 과하게 먹은 점심을 소화시키기에는 딱 안성맞춤인 코스다.


사람에게 인기가 없어서 그런지 산에는 동물이 참 많다. 지난봄에 올랐을 때는 여기저기 고개 돌리는 곳곳마다 다람쥐로 가득해서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는데, 이번에는 다들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았는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짧은 거리를 재빠르게 내달리다, 가스불 끄는 걸 까먹은 사람처럼 뚝하고 멈춰 섰다가, 멍한 눈으로 한참 허공을 바라보다가, 손에 쥔 무언가를 갉아먹기를 반복하는 녀석들의 움직임은, 철 지난 아케이드 게임의 그래픽처럼, 픽셀 단위로 끊어져 있어 무언가 현실의 움직임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또 이른 여름에는, 중턱에 있는 정자에 앉아 있다가 고라니를 만난 적도 있다. 덤불 속에서 불쑥 고개를 내밀고 나온 녀석은, 마치 내가 자기 자리를 빼앗은 게 못마땅하다는 듯 나를 흘겨보고는 획하고 뒤돌아가다가 다시 내 쪽을 흘기고는 숲으로 사라졌다.


그 당시에는 녀석의 뉘앙스가 사람의 것과 너무도 비슷한 탓에 그 어떤 위화감도 느끼지 못했는데, 녀석이 사라진 이후에야 상황 파악이 되었다. 그 장면을 카메라에 담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한으로 남아있다.


이후로 산에 오를 때는, 혹시라도 갑자기 튀어나올 고라니를 대비해 주머니 속 핸드폰을 장전해 둔 권총 맹키로 조물딱 거리게 된다. ‘어디 한 번 나오기만 해 봐. 바로 shot 해버릴 테니까….’라는 중얼거림을 곁들이며….


사람의 소리가 닿지 않는 산은 이름 모를 새들의 소리로 소란하다. 여기저기서 저마다 재잘거리는데, 듣다 보면 나름의 리듬이 있고, 또 오고 가는 것이 있고, 주고받는 것이 있다. 언젠가는 새소리 통역 기술도 등장할까? 분명 별 얘기 아니겠지만, 궁금한 건 사실이다.


저수지를 보고 내려오는 길에, 기척이 느껴져서 뒤를 보니 빨간 목줄을 한 황구 한 마리가 내 뒤꿈치에 붙어서 따라왔다. 냄새를 맡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잠깐 멈춰서 기다려주었는데, 갑자기 엉덩이를 내리고 볼 일을 보기 시작한다.


그때 마침 밑에서 등산객 한 분이 올라온다. 언뜻 보면, 마치 내가 목줄 없이 강아지 산책을 시키면서, 똥도 안 치우는 불량 견주로 오해받기 딱 좋은 그림인 것 같아 난감해하고 있는데, 올라오고 있던 그 등산객이 강아지의 이름을 크게 부른다. 황구는 얼른 엉덩이를 올리고 등산객 옆으로 쫄랑쫄랑 붙어 걷는다.


하마터면 불량 견주를 선량한 등산객이라 오해할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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