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이걸 어쩌나

이유 모를 불화

by 이일삼


울산에 내려왔다. 설 당일에는 시간을 내기가 어려울 것 같아 서둘러 고향을 방문했다. 여전히 차 많고 길 좁은 도시다.


내려오기 몇 주 전, 겸사겸사 얼굴 좀 볼까 싶어 고향 친구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4년 전, 울산에 있는 공장에서 일하던 시기에 자주 모였던 친구들인데, 한 놈은 초등학교 친구, 한 놈은 중학교 친구, 한 놈은 성당에서 만난 후배다.


초등학교 친구 놈과 후배 놈은 대기업 엇비슷한 중견기업과 삐까 번쩍한 대기업에 각각 취직해서 잘 살고 있고, 중학교 친구 놈은 나랑 비슷하게 이리저리 방황을 겪다가 요즘은 쉬는 모양이다.


서로 통하는 부분이 있어서인지, 중학교 친구 놈에게는 흔쾌히 약속을 얻어 냈지만, 초등학교 친구 놈과 후배 놈은 어쩐지 반응이 시큰둥하다. 후배 놈은 ‘상황 보고 알려준다.’고 하고, 초등학교 친구 놈은 읽어 놓고도 몇 주 째 답장이 없다.


그게 내심 서운하긴 해도 이런 날이 아니면 보기 힘든 얼굴들이라, 마음을 다시 고쳐 잡고 문자를 보냈더니, 약속이 생겼다고 한다. 참. 모양 빠진다. 마치 내가 자꾸만 바쁘다는 사람 붙잡고 만나 달라고 애원하는 것 같은 그림이라 얼굴이 붉어졌다.


다들 바쁜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나 찬밥 취급을 받을 줄이야. 그건 몰랐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게 당연지사라지만, 그 대상이 사랑뿐 아니라 우정에도 유효하다는 것을 늦게서야 깨닫는다.


얼굴이야 나중에라도 보면 그만이지만, 혹시나 마음에 담아둔 감정이 있는 것은 아닐지. 그게 적잖이 걱정된다. 찔리는 구석 여럿 떠오르는 걸 보니, 참. 나도 잘 살아 오진 않았구나 싶다.


서운한 감정을 감추고 “그래 이번엔 힘들겠구먼." 하고 답장을 보냈다. 이번에도 답이 없다. 그게 뭔지 도통 감이 안 잡히지만, 감정이 상해도 단단히 상했나 보다.


이걸 이걸 어쩌나.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11화공복에는 무게 욕심을 내지 말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