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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에게 빼앗긴 자리

그래 그자리 너네 가져라

by 이일삼


울산 집에는 고양이가 두 마리 있다. 올해로 각 8살, 7살이 되었고, 두 녀석 다 스트리트 출신의 코리안 숏헤어이고, 한때 수컷이었던 땅콩 리스의 성별이다.


먼저 온 녀석은, 늦겨울날 건물 구석에 숨어 떨고 있는 녀석을 누나가 품에 숨겨 데리고 왔다. 노란색과 하얀색이 섞인, 이른바 치즈 냥이다. 성격은 강아지가 아닌가 싶은 정도로 유순하다. 사람을 좋아하고 곁을 잘 내어준다. 손님 다리에 올라가서 잠을 자는 것이 녀석의 환영 인사 방법이다.


늦게 온 녀석은, 집 근처 학원에 아이들이 구조한 것을 우리가 맡게 되었다. 검정과 하얀색이 섞인 턱시도 냥이다. 처음에는 잠깐 돌보다가 입양을 보내려 했는데, 연인지 정인지 결국엔 못 보내고 같이 살게 되었다.


성격은 낙천적인데, 음. 그게 과하다. 지나치게 명랑하다고 해야 할까. 고양이 라면 절대 하지 않을 실수가 많다. 발을 헛디뎌서 다리가 부러진다거나, 어디론가 사라져서 찾아보면 갇혀있었다거나, 스스로 갇힌 줄도 모르고 태평하게 자고 있던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녀석들이 오고부터 많은 것들이 변했다. 우선 엄마의 상태가 좋아졌다. 나와 누나가 집을 떠나고 미묘하게 우울하던 엄마의 표정이 좋아졌다. 우리의 빈자리를 녀석들이 채워준 것 같아 고마운 마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사실 엄마는 고양이 라면 인상부터 찌푸리던 분인데, 그런 엄마를 꼬셔서 집을 점령한 것을 보면, 두 녀석 모두 요물도 보통 요물이 아니다. 세상 어떤 요물이 이렇게나 허접하고 헐렁할까 싶지만 그게 녀석들의 시크릿 노하우일지도 모른다.


두 녀석 다 남자를 별로 안 좋아한다. 아니 나만 싫어할지도 모르겠다. 누나와 내가 같이 집을 방문하면, 두 녀석 다 누나에게 쪼르르 달려간다. 그렇게 누나 옆에 착 붙어서 “당신은 누구시길래 우리 누나랑 같이 오세요?” 하는 눈빛을 보내온다.


참 나. 어이가 없다. 내가 없는 사이에 엄마 곁을 지켜준 것은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만, 그렇다고 내 자리까지 넘보는 건 선을 넘은 것 아닌가? 그동안 내가 일이 바빠 역할에 충실하지 못했다곤 해도, 이 집안의 ‘막내 남성’ 포지션은 원래 내 자리란 말이다.


그 어떤 계승식도 없이 홀랑 자리를 빼앗으려 드는 괘씸한 녀석들에게는 절대로 넘겨주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이 이미 그 자리에 앉아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나를 퇴물 취급하고 있지만.


엄마가 녀석들을 대하는 모습을 보며, 기억에는 없지만, 우리가 어릴 때 엄마는 저런 표정과 목소리로 우리를 대하셨겠구나. 역시 사랑받았구나. 새삼스러운 감정이 든다.


하이구. 바닥에 몸을 비벼가며, 꼬리로 바닥을 탁탁 내리치며, 그릉 그르릉 기분 좋은 진동을 내어가며, 엄마를 홀리려고 안달이다. 저만치나 열심히인 녀석들을 내가 무슨 수로 이기나.


그래. 나는 니들만치 할 자신이 없다. 그 자리 너네 가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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