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과 세뱃돈과 잔소리
설날이다. 코흘리개 시절에는 일 년 중 가장 기다렸던 날이다. 멀리 떨어진 사촌들과 한자리에 모이는 날이자, 어린아이들의 대목. 바로 세뱃돈을 받는 날이기 때문이다.
친구들 중 몇몇은 받은 세뱃돈을 모두 어머니가 맡아주는(돌려받은 사례를 들은 적이 없다) 경우도 더러 있었지만, 우리 집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날은 나의 일 년 용돈 예산이 정해지는 아주 중요한 날이었다.
당시의 나는 세뱃돈을 조금이라도 더 받을 수만 있다면 영혼도 팔 준비가 되었기에, 열심히 장기자랑을 준비해 갔다. ( 태권도 품세나, 철 지난 유행가가 대부분이었다.) 그렇게 준비한 정열의 똥꼬쇼를 마치면, 어른들은 지갑을 열었다.(이때 안 보는 척이 국룰) 어떤 날은 만 원으로 끝나는 날도 있었지만, 잭팟이 터지는 날도 있었기에, 어린 나로서는 장기자랑을 멈출 수가 없었다.(사춘기가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제는 입장이 바뀌어서, 내 또래인 친구들은 세뱃돈을 받는 쪽에서 주는 쪽으로, 바통을 넘겨받아 슬슬 역할 교대를 하는 시기이지만, 슬프게도 나는 아직이다. 조카가 없다는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아직까지 자리를 잡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때문에 몇몇 나와 비슷한 상황의 사람들은 명절을 굉장히 기피할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친척들을 만나는 것이 심적으로 굉장히 큰 부담이기 때문이다. 별로 유쾌하지 않은 자신의 상황을 알려야 하고, 그것을 이유로 쉰 소리를 듣고 싶을 사람은 없을 테니까.
다행히도(?) 나의 경우에는, 스스로 하는 자책을 제외하면 그 누구에게도 잔소리를 듣고 있지 않다. 친척들 모두 각자의 삶이 너무 바쁘고 빠듯하기 때문에, 명절이라고 해도 모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어딘가 씁쓸해진다.)
이번 설도 친척들은 모이지 않고, 우리 가족끼리 조용한 명절을 보냈다. 예전의 시끌벅적함과 두둑한 세뱃돈이 그립기도 하지만, 잔소리를 듣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해 본다.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