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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혹의 보석, 매혹의 시간 전(展)을 보고.

고혹의 보석, 매혹의 시간 리뷰

by 이일삼

잠실 롯데 뮤지엄에서 하는 주얼리 전시를 보고 왔다. ‘고혹의 보석, 매혹의 시간’이라는 이름의 전시로, 기원전 메소포타미아의 작품부터, 중세 유럽과 근대의 작품까지 다양한 시간대의 주얼리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놀라운 점은, 이번 전시의 모든 작품이, 한 사람 개인의 소장품이라는 것이다. 가격으로 환산하면 6000억 훌쩍 넘는다고 하는데, 돈이 많으면 취향의 영역이 이만큼이나 다채로워질 수 있구나 싶다. 소장자는 여기 전시된 물건들을 한 번씩 착용해 봤을지가 궁금해진다.


주얼리 전시의 장점은, 보석과 주얼리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더라도, 직관적으로 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아는 것이 많으면 훨씬 풍부하게 즐길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보석이 가득 박힌 장신구보다, 섬세한 세공 기술이 들어간 고대의 금 장신구와 신고전주의 작품. 그리고 아르누보 작품들에 시선이 갔다.


보석이 가득한 장신구는 화려함에만 치중되어서 어딘가 아름다움의 밸런스가 깨져 보인다고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더 화려할지에만 모든 신경을 쏟다 보니, 심미적 아름다움에서는 멀어진 듯 보였다. 무엇이 더 화려한지를 경쟁한다고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예술과 심미에 능하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런 직관적이고 과시적인 화려함 자체가 보석이 지닌 속성이며 존재 가치라는 사실이 더욱 뚜렷하게 느껴졌다. 오히려 보석에게서 더 높은 아름다움을 찾으려는 시도 자체가 오만이며, 아름다움에 대한 도전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작품 중에서는 왕족과 귀족이 실제로 착용했던 주얼리도 많았는데, 찬란했던 영광의 시대를 지나 지금은 이곳 서울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모습이 어딘가 상징적이라 생각했다.


무한한 권력과 힘을 뽐내기 위한 수단으로써 만들어진, 화려하지만 도구일 뿐인 장식품은 세상에 남았지만, 영원할 것이라 믿은 권력은 사라지고 없는 것이 어쩐지 아이러니하게 느껴진 것이다.


누군가는 장식품이 곧 권력의 부산물이니 권력도 남은 것이라 주장할 수 있겠지만, 권력이 여전히 작용하고 있다면, 어떻게 이 많은 장신구들이 개인의 소장품으로 흘러 들어갔겠는가.


근대 작품으로 오면, ‘까르띠에’라던가 ‘반클리프 앤 아델’ 같은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도 여럿 보인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명품으로 살아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대단하면서도 무섭게 느껴졌다. 권력과 보석의 주인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브랜드는 여전히 생명을 이어간다는 점이 그런 마음을 들게 했다.


전시는 전체적으로 만족스러웠다. 다만 작품 소개란의 크기와 글자 폰트가 조금만 더 컸으면 좋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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