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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 정리 스페셜리스트의 고백

계획형 인간의 진실

by 이일삼


세상에는 두 가지 타입의 사람이 존재한다. 행동부터 하는 사람과 계획 먼저 짜는 사람, 책상 앞에 앉으면 곧바로 공부를 시작하는 사람과 책상 정리 먼저 하는 사람. 무엇이 더 나은 방법인지에 관해서는 여전히 갑론을박이 끊이지 않지만, 결과가 좋은 게 장땡이라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제목부터 눈치챘겠지만, 나는 계획형 인간이며 책상 정리부터 하는 사람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계획만 짜면서 책상이 굉장히 깔끔한 사람이다. 실천과 공부보다는 계획과 책상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다.


나도 스스로의 불합리함을 잘 알고 있다. 원대한 계획에 비해 초라하기만 한 실천은 내가 가진 고질적인 문제다. 언제나 '최대 효율'을 고민하고 분석하지만, '스스로의 실행력' 따위의 현실적인 부분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지키기만 한다면 환상에 가까운 결과를 성취하겠지만, 객관화의 부재는 늘 내 발목을 잡는다. 모르긴 몰라도 지금까지 만든 계획이 실행만 됐더라, 이미 일론 머스크의 오른팔이 되겠다는 목표를 이루고도 남았으리라.


주변을 살펴보면 정작 무언가를 해내는 사람들은 언제나 행동이 앞서는 사람들이다. 처음에는 시행착오를 겪고, 만들어낸 결과물이 허접하기 짝이 없더라도, 그들은 꾸준하게 행동을 이어간다.


그 결과 그 분야의 프로가 되고, 그것으로 돈을 벌어 살아간다. 계획을 완벽하게 짜는 것보다, 꾸준한 행동이 그들을 완벽에 가깝게 만든다.


이제는 나도 실천의 중요성을 깨닫고, 허접하더라도 행동하며 결과를 내는 것에 더욱 많은 노력을 쏟고 있지만, 여전히 고효율에 대한 열망은 사라지지 않는다. 아니, 참을 수가 없다.


그런 이유로 오늘도 새로운 계획을 짜고야 말았다. 이전의 계획과 비교해 보면 크게 달라진 점은 없다. 하지만 장장 2시간에 걸쳐 새로운 계획표를 만들어야만 속이 후련한 것은 왜일까. 마치 이미 반짝거리는 책상을 한 번 더 닦는 꼴인데 말이다. 고효율에 대한 열망은 비효율을 낳고 만다.


그딴 게 뭐 그리 중요하냐고 꾸짖는다면, 할 말은 없다. 그냥 그래야만 하는 사람도 있다는 말 밖에. 나에게는 재채기와 사랑에 더해, 참을 수 없는 것이 하나 더 있는 것이다.


이것은 스스로에 대한 고발이며, 계획 짜기의 달인이자, 책상 정리의 고수. 이 분야 스페셜리스트의 고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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