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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발을 망설이는 이유

외모의 본질에 관하여.

by 이일삼


요즘 들어 삭발을 하고 싶은 충동이 마구 솟구친다.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그게 편할 것 같기 때문이다.


나는 꽤 오랫동안 장발을 유지하고 있다. 5년 전, 기부를 위해 머리를 길렀던 경험 이후로 장발인 상태가 편안해진 것이 그 이유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장발이 아닌 자아상이 떠오르지가 않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런 심적 편안함과는 달리 육체적으로는 피로가 쌓이고 있다. 머리를 감을 때와 말릴 때는 말할 것도 없으며, 특히 점점 정리가 안 되어 지저분해지는 머리를 다듬어야 할 시기가 가까워지면 이런 충동은 극에 다다른다.


해야 할 일은 산더미고, 시간은 늘 부족한데, 고작 머리카락 때문에 허비되고 있는 시간을 계산해 본다면, 당장이라도 삭발을 하는 편이 여러모로 합리적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망설이고 있는 것은, 아직 놓지 못하고 있는 알량한 외모 욕심 때문이다. 나의 외적 요소가 출중해서 욕심을 낸다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로 그렇지 않기 때문에 놓지 못하는 것이 있다는 말이다.


차은우 씨로 예를 들어보자. 차은우라는 인물에게 있어서 머리카락은 그저 수단이며 도구일 뿐이다. 만일 외적인 요소를 수치화해 본다면, 머리카락이 차지하는 비중은 아마 1퍼센트 정도도 안 될 것으로 보인다.


얼굴이라는 본질이 있기에 그 외의 요소들은 모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옵션의 영역인 것이다. 만일 차은우 씨가 삭발을 하더라도 그저 머리카락이 없는 차은우일뿐, 그의 외적인 본질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나에게 있어서 머리카락은, 외적인 요소의 90퍼센트를 차지하는(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본질 그 자체이다. 일례로, 머리가 잘 되면 외모가 올라가고, 안 되면 외모가 떨어지는 것만 보아도 충분한 설명이 된다.


그런 본질을 잘라내고 난 다음 적나라하게 드러날 나의 앙상한 실체를 떠올리면, 가슴이 시큰해져 삭발을 하려던 마음이 금세 사그라들고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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