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이다. 이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어릴 때는 정월 대보름이 되면 초등학교 옆에 있는 커다란 공터에서 대대적인 동네 행사가 진행되었다.
행사장 가운데는 볏짚으로 쌓은 커다란 구조물이 있었고, 그 주변으로 행사장 천막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거기에 모여 어른들은 머릿고기와 술을 먹었고, 어린애들은 고구마를 구워 먹거나 어른들이 나눠주시는 땅콩을 받아먹으며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
연을 날리는 아이들도 많았다. 간혹 어른 중에서도 연을 날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보통은 아들과 함께 나왔다가 아빠가 더 열중하고 있는 케이스였다. 그중에 꼭 어린애들을 상대로 연 싸움을 하려는 어른들이 있었다. 당시에는 '어른이 돼서 왜 저럴까?' 하고 이해를 못 했는데, 이제 와 그 나이쯤 되어보니 이해가 된다. 애들한테 재밌는 건 어른도 똑같이 재밌다.
해가 지기 시작하면 가운데 있는 볏짚을 태우며, 쥐불놀이가 시작됐다. 불에는 무언가 사람을 흥분시키고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마성이 있는 것 같다. 행사장 가운데 커다란 불길이 올라가고, 그 주위로 쥐불놀이를 하고 있으면, 어딘가 주술적 의식을 치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고, 거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동화되어 축제에 몰입하게 되었던 기억이 있다.
쥐불놀이는 깡통에 불붙은 볏짚을 넣고 뱅글뱅글 돌리는 게 전부다. 깡통을 돌리는 것 따위가 뭐 재밌냐 할지 모르지만, 불에 잔상으로 꽤 멋진 연출이 가능하고 그 바레이션도 다양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게 된다. 이건 뭐 K- 닥터 스트레인지가 따로 없다.
하지만 언제나 즐거움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 집에 돌아와서 보면, 쥐불놀이를 하면서 생기는 불똥 때문에 옷에 구멍이 송송 뚫려있다. 언젠가는 한 번, 아껴 입느라 몇 번 입지 않은 겨자색 단가라 티셔츠를 입고 행사에 갔다가 옷에 구멍이 송송 뚫리는 바람에, 울며 겨자 먹기로 겨자색 옷을 버렸던 기억이 있다.
이제는 어디서도 이런 풍경을 보기가 힘든 것 같다. 어딘가에서는 아직도 행사를 이어갈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사는 곳에서는 '부럼'을 나눠먹는 정도에서 끝인듯하다.
이제는 추억이 되어버린 정월 대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