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도 백구도 처음입니다만]
책이라기에 부끄러운, 이 한 권에 모아둔 글은 반려동물 이야기도, 백구 혹은 강아지 생각도, 반려견 ‘한량이’의 성장일기도 아닙니다. 어느 날 문득 시골에 내려와 백구와 함께 살아가며, 스치듯 지나가던 소소하고 잡다한 생각의 파편을 담은 하나의 기록에 가깝습니다.
생각이 무척 많은 사람입니다. 재미 삼아 사주나 토정비결을 보면, 늘 ‘생각이 많은 사람’으로 분류되곤 했어요. 일화로 고등학교 시절, 절친인 친구 어머님은 몸이 매우 편찮으셔서 신내림을 받으신 분이었습니다. 집 한쪽에 신방(神房)을 차려두고 지내셨는데, 한 번은 “점을 봐줄까?” 하시더니 첫마디가 “오빠야- 니는 생각이 와 그리 많노-! 그라니까 아무리 무그도 살이 안 찐다 아이가.”라고 하시더군요. (친구 어머님은 아기 동자승을 모셨습니다).
반박할 수가 없었습니다. 친구의 어머님이어서가 아니라 명백한 사실이니까요. 다른 일화는 군대 시절로 거슬러 갑니다. 평생 체중이 70kg 내외를 유지했는데, 군대에서 4개월 만에 무려 90kg까지 살이 쪘어요. 처음 받았던 군복은 흡사 래시가드-핏의 밀리터리 룩으로 다시 태어났고, 평생 몸담아야 할 곳은 군대인가 싶었습니다. 그런 사유로 말뚝... 아니, “자네, 직업군인의 길을 걷지 않겠나?”라는 인생 첫 스카웃 제의를 수없이 받으며 병역 의무를 완수했어요. 시키는 일만 하면 되는데 삼시 세끼 밥도 꼬박 챙겨주며 운동까지 시켜주고, 9시면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일과 덕분에 잡생각이 없어지고 마음이 편해져 살이 쪘던 거죠.
뇌 활동에 엄청난 칼로리가 소비된다던데 군대에서 직접 증명한 셈입니다. 체중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생각이 많으면 일상이 참 피곤하겠다 싶겠지만, 그렇지만은 않아요. 어떤 일을 해야겠다는 결정을 내리면 행동이 무척 빠른 건 반대급부의 장점 같아요. 여러 경우에 대한 고민은 이미 끝났기 때문이겠죠. 물론 얕은 경험 안에서 검토한 것이라 전혀 예상치 못한 변수도 생기지만, 크게 당황하지 않고 대처합니다.
귀촌 또한 마찬가지였어요. 많은 지인은 “응? 갑자기 웬 귀촌?!?!”, “네가 시골에서 지낼 수 있겠어?”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라 코웃음 쳤습니다. 하지만 이미 6~7년 전에 시작된 생각이었고, ‘귀촌하겠다’라며 공개한 것은 결정과 준비를 마쳤음을 전하는 통보였던 거죠.
아무튼 대도시에서만 태어나고 자랐던 제게 귀촌 생활은, 영화 ‘리틀 포레스트’처럼 아름답고 낭만적이기만 하진 않았습니다. 아! 그렇다고 ‘안 좋고 힘들기만 했었나?’라는 흑백논리로 받아들이진 않으시길. ‘귀촌’이라는 뭔가 드라마틱한 용어 속에는 정말 스펙터클한 마법이 숨겨져 있을 듯했지만, 이곳 시골 또한 사람이 살아가는 장소일 뿐임을 하루하루 지날수록 절실히 느끼고 있어요.
별반 다를 바 없이 시골에서 살아가는 일상의 생각을 남겨두고 싶었습니다. 어쩌면 제 인생에서 이렇게 큰 변화와 생각이 많은 시기는 다시없을지도 모르니까요. 반려하는 ‘한량이’를 보며 ‘지금, 무슨 생각을 하니?’라고 마음속 질문을 던지듯, 언젠가 먼 훗날, 지금의 저에게 ‘그땐, 무슨 생각을 했었니?’라고 묻고 싶은 날이 오지 않을까요?
그때 즈음 이 책을 다시 펼쳐 본다면 지금의 저와 ‘한량이’가 함께 한 시골살이가 분명 인생의 좋은 자양분이 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두서없는 생각의 파편을 하나하나 주워 담아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