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도 백구도 처음입니다만]
2015년 봄, 남해로 왔다.
부산에서 나고 자라 서울에서 직장인 시절을 보낸, 대도시에서만 살며 나이 들던 사람이 마흔이 되던 해에 갑자기 ‘경상남도 남해군’이라는 국토 남단의 끝, 시골 마을로 온 것이다. ‘마흔’에 특별한 의미를 뒀기에 이뤄진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기분이 내키는 대로 그때그때 감정에 충실했던 탓에 갖게 된 꿈이었으며, 귀촌 예정일만 계획에 없었을 뿐 장기간에 걸쳐 치밀하게 준비된 일종의 사건에 가까웠다.
남해에 내려가면 해야지 생각했던 일은 게스트하우스였다. 돈 벌면 여행하기 바빴고 매번 백패커스나 게스트하우스를 주로 이용했으니 경험은 충분하다고 여겼다. 봄에 내려와 여름에 게스트하우스를 오픈했고, 가을을 정신없이 보내곤 이어서 겨울이 됐다. 비수기의 남해는 꽤 적적하다. 시골에서 첫 계절을 보낼 때는 모든 것이 새롭고 즐거우며 감탄이 이어졌지만, 이런 적막한 시골에서 계절이 반복될 때도 설렘이 유지될까? 게다가 혼자인 내가? 답은 뻔했다.
슬슬 ‘두 번째 맞는 봄엔 뭘 하며 지내볼까?’ 하던 겨울 어느 날, 정말 느닷없이 벼락처럼 백구 한 녀석이 내게 왔다. 해안도로를 따라 드라이브나 하며 비수기의 한적한 남해를 즐기던 중 평소 친하게 지내던 다른 게스트하우스 주인장 형님의 전화를 받았다. 너무 귀여운 백구 아기가 있는데 키워보지 않겠냐고. 그렇게 사진 한 장을 받았다. 5남매 중 막내 여자아이라고 했다.
도시를 떠나면 반려동물과 함께 지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서울에서도 계속 여러 반려견과 함께 생활했고 많을 때는 다섯 강아지와 한 공간에서 지냈지만, 한 생명을 반려한다는 책임과 의무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한 번 여행을 가면 장기간 머무르며 현지인 놀이 즐기기를 좋아해서, 반려동물과 함께 지내는 생활은 아주 큰 심리적 난관이 뒤따랐다.
여행을 떠나는 동안 누군가에게 장기간 보호를 부탁해야 한다는 뜻인데, 부탁하기도 어려울뿐더러 돌봐줄 사람에게도 더없이 미안해서 참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낯선 환경에 적응을 잘할까 싶기도 하고. 그래서 서울을 떠나며 다시는 반려동물과 함께 지내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늘 그렇듯 다짐은 쉽게 깨지곤 한다. 백구 꼬물이 남매의 사진을 본 순간, 빙하처럼 크고 단단해서 깨어지지 않을 거라 여겼던 결심과 다짐은 남쪽 지방에 내리는 눈 녹듯 순식간에 사라졌다. 생각보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어느새 차를 돌려 형님네 게스트하우스로 향하고 있었다.
사진 속에 기도 못 펴고 쭈그러져 있던 토실토실한 막내 백구는, 그렇게 내게 왔다.
▶ 내가 누군지 맞춰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