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도 백구도 처음입니다만]
고등학교 때 적성검사 결과, 문과 99.7%가 나왔을 땐 알지 못했다,
이과반에서 공대를 목표로 대입을 준비하고 있을 줄은.
사람은 기술을 배워야 먹고 산다는 어른들 말씀을 들을 땐 몰랐다,
정말 먹고 살기에만 급급한 일생을 보낼지도 모른다는 것을.
이과반임에도 수학을 포기하고 교과서에 온갖 그림을 그려댈 땐 몰랐다,
건축과에서 T자와 도면통을 들고 다니며 건물을 그리게 될 줄은.
입대 전 어느 초여름, 혼자 꽤 긴 여행을 떠났던 날,
논두렁 위에 앉아 묘한 감정이 가슴을 파고들 땐 알지 못했다.
회색빛 도시에서만 나고 자란 아이가 어느 날 이렇게,
아무 연고 없는 시골에서 하루하루를 살고 있을 줄은.
고등학교 적성검사에서 장래직업으로 농부 91%가 나왔을 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몇십만 평의 경쟁 설계에 참여하던 과로사 직전의 월급쟁이가, 아무런 예고없이 푸르게 펼쳐진 논두렁 위를 거닐며 조그만 가게를 꾸리며 살아가게 될 줄은.
▶ 내 이름을 '한량이'라 지을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