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도 백구도 처음입니다만]
초딩, 아니 국딩 시절에는 입만 열면 얼굴이 빨개지는 내성적이고 소심한 아이였다. 지금 이렇게 작은 가게를 혼자 운영하며 낯선 사람에게 ‘안녕’하고 인사하는 모습을 당시에는 상상조차 못 했다. 물론 나이 들며 능글맞아지기도 했지만.
그래서였을까? 초등학교 3학년이 되자 부모님은 막내아들을 보이스카우트에 입단시켰고, 그곳에서 알게 모르게 성격이 바뀌어 갔다. ‘숨겨왔던 나의 수줍은 마음’은 모두 온데간데 없어지고, 방학 캠프 때마다 진행되는 담력훈련을 손꼽아 기다렸다. 공포와 스릴을 즐겨서가 아니다. 선생님과 선배의 귀신 흉내는 별로 무섭지도 않고 관심이 없었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건네주는 산타할아버지는 동화 속에서 루돌프를 타고 다니는 그 산타할아버지가 아님을 알고도 남을 나이였으니까.
깜깜한 밤, 후레쉬 불빛만 의지하고 담력훈련 코스를 따라 걷다 보면 전혀 몰랐던 신비한 세상이 펼쳐졌다. 도시에서 볼 수 없는 밤하늘을 뒤덮은 수많은 별빛에 두 눈이 반짝였고, 적막한 밤이 되면 더 크게 들리는 찌르르- 풀벌레 소리와 쪼르르- 개울물 소리가 귀를 즐겁게 했다. 깊은 들숨과 날숨을 반복할 때마다 초저녁 이슬을 머금은 풀 냄새, 나무 냄새가 온몸 가득 퍼져나갔고 팔을 뻗으면 살랑거리는 나뭇잎이 손끝을 간지럽혔다. 물론 아직도 너무 싫어하는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거미줄이다. 초저녁부터 열심히 집을 지으며 밤의 불나방을 좀 잡아볼까 싶던 거미도, 아닌 밤중 날벼락이 참 황망하기 이를 데 없겠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거미줄이 피부를 칭칭 감는 느낌은 여전히 찝찝하며 피하고 싶다.
아무튼 자연 가까이에서 캠프 체험을 자주 하다 보니, 꽤 어린 나이에 자연을 그리워하며 틈만 나면 밖에서 뛰어노는 아이로 변해갔다. 단체 생활을 배우고 낯선 사람과 어울릴 줄 알게 됐다. 하지만 세상의 이치가 뭔가를 얻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 성격을 바꾼 대신 방랑벽을 얻었다. ‘얻는다’라는 의미가 무조건 좋은 뜻은 아니었다. 웃기지도 않은 역마살, 참 힘든 병이다. 떠나지 못하면 온몸이 아파져 온다. 육체뿐만 아니라 마음과 정신까지 피폐해진다. 그 증상을 완화하는 방법은 딱 한 가지인데 멍때리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런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고 떠나는 순간을 늘 그리워하며 살지만, 뜻대로 잘되지 않는다.
여유를 찾기란 참, 쉽지 않다.
▶ 나 때문에 여행도 맘대로 못 가는거 알아, 그래서 고마워 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