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진 Nov 11. 2019

18.애매한 놈

[시골도 백구도 처음입니다만]

나는 귀촌인이다.

나는 귀촌한 외지인이다.

나는 귀촌한 외지인인데 작은 가게를 한다.

나는 귀촌한 외지인인데 작은 가게를 하며 외지인과 여행자만 만난다.


이곳에 살아 온 사람은 나에게 ‘도시 생활’을 묻고,

이곳에 놀러 온 사람은 나에게 ‘시골 생활’을 묻는다.


나는 어느 교집합에 속하는 사람일까? 나의 하루는 도시놈도 시골놈도 아닌, 어디에도 섞이지 못하는 부유물처럼 떠다닌다. 이곳에 계신 분들의 삶 속으로 스며들고 싶지만 그리 녹록지 않다. 그들이 나쁘거나 배척해서가 아니라 서로 너무 다른 환경에서 성장한 탓에 미묘한 감정선을 맞추기가 상당히 어렵기 때문이다. 청년회 모임과 마을 행사도 몇 번을 참석하고 어울려 보려 해도, 매번 생전 처음 겪는 감정의 파동을 얻어맞고 어린아이처럼 아무 말도 못 한 채 그 자리에서 겉돌았다. 정을 듬뿍 담아 따라주시는 술만 넙죽넙죽 받아 마시다 만취한 몸으로, ‘난 누군가, 여긴 어딘가’ 정신을 놓은 듯 불편한 시간만 보내다 비틀거리며 돌아오곤 했다.


도시놈도 아닌, 그렇다고 시골놈도 아닌, 어디에도 섞이지 못하는 그저 애매한 놈으로 오늘을 또 부유한다. 그래도 스스로 느끼기에 외래 유해동물은 아닌 듯해서 다행이다.

잘 정착해야겠다.


알고 보면 너무나도 힘들고 어려운 부사, ‘잘’.


▶ 마음 상처 입으면 반창고 붙여줄게, 힘내!

이전 17화 17.방랑벽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