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진 Nov 07. 2019

06.조금 가까워지고 싶어요.

[시골도 백구도 처음입니다만]

남해는 산이나 언덕이 끝나면 곧 이어져 바다가 펼쳐진다. 평지가 별로 없는 척박한 지리 조건 탓에 계단 형태의 다랭이 논밭이 발달했다. 생업을 위해 뼈를 깎는 선조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지형이 아름다운 풍광을 이루고 그 자체가 관광자원이 되기도 한다. 산에서든 들에서든 길 위에서든, 눈을 조금만 돌리면 바다가 펼쳐지고 다도해의 풍경이 마음을 사로잡는 곳에 살다 보니 그런 환경을 부러워하는 지인이 꽤 많다.


남해에 살지만, 정작 바다보다 산을 더 좋아하는 건 너무 모순일까? 산을 너무 좋아해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우리나라 이곳저곳의 많은 산을 쫓아다니다가 결국 남'해(海)'라는 섬에 살고 있으니, 앞날은 참 알 수가 없다.


무슨 일을 하든, 어떤 대화를 하든, 이유를 밝히길 좋아하는 사람이 간혹 있는데 “왜 산이 좋아요?”라는 질문에 “그냥, 초록초록한게 좋아서요”라고 답했던 적이 있다. 뒤늦게 ‘그 사람은 꼭 이유를 알고 싶어서였을까’ 궁금했다. 낯선 사람과 조금 더 친해지고 가까워져 보려고 망설이다 질문을 건넸을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무성의하게 단답형으로 답해버려 대화를 단절해 버린 건 아닌지 마음이 편치 않았다. 다음에 혹시나 마주치면 무성의함을 사과하고 “생각해봤는데 이러이러해서 산을 더 좋아하나 봐요.”라고 먼저 말을 걸어 보려고 그 이유를 생각해 봤다. 물론 그 사람은 다시 마주칠 일이 없었고, 준비된 답을 할 기회는 생각보다 자주 오지 않았지만.


‘스치는 바람 소리가 좋다. 그 바람에 실려 오는 숲의 향기가 좋고, 향기가 흐르는 길을 따라 바스락거리며 구르는 이파리 소리가 좋다. 나뭇잎 하나마다 투영된 영롱한 빛의 산란이 좋고, 그림자를 드리워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팔을 길게 뻗은 나무가 좋다. 이끼 맺힌 바위와 조약돌 사이를 지나며, 흩어져서 방울이 되었다가 다시 모이기를 반복하며 졸졸졸 소리 내어 흐르는 냇물이 좋고, 나무와 바람과 물과 낙엽 사이를 오가며 화음을 맞춰 지저귀는 생명의 소리가 좋다.’


“그래서 나무와 숲과 생명을 품은 산을 무척 좋아해요.”라고 답할 기회가 생긴다면 좋겠다. ‘당신의 마음을 알아채지 못해 미안했어요’라는 마음속 사과와 함께.



"산이든, 바다든 난 집사만 있으면 돼."

이전 05화 05.꽃물을 들이듯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