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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녕 Feb 11. 2021

여유만큼이 면역력

여유로워야 내 삶의 리듬을 만든다

며칠 전부터 이가 점점 시큰해지기 시작했다. 이러다 말겠지 싶었는데 웬걸, 통증은 갈수록 더 심해졌다. 치과에 가보니 어금니에 금이 갔다고 했다. 그것도 무려 6개나! 의사 말로는 딱딱하거나 질긴 음식을 자주 먹거나 잠잘 때 이갈이 또는 이를 악물면 치아에 금이 가기 쉽다고 했다. 내 경우는 금이 간 어금니뿐만 아니라 치아가 전체적으로 마모가 심했고 그중 몇 개는 깨져있기까지 한 걸로 미루어보아, 이 악무는 습관이 원인이었다.


    자고 일어나면 항상 턱이 아팠다. 매일 악몽을 꾸는 것도 아닌데 어찌나 이를 꽉 다물고 자는지, 아침에 일어나면 치아가 얼얼했다. 가장 편안해야 할 시간에 이렇게나 긴장하는 신체라면, 평소에는 더 심할 게 불 보듯 뻔했다. 내가 하루를 어떻게 보내길래 이토록 24시간이 긴장감의 연속일까.


    푹 잠들지 못한 지 오래다. 매일 아침 ‘5분만 더’와 싸우다 지각하기 일보직전 헐레벌떡 일어난다. 출근부터 정신없다. 근무시간은 회의와 출장만으로도 꽉 찰 때가 많다. 보고서 작성하는 건 자연스럽게 저녁식사 이후로 미뤄지게 된다. 밤늦게 일 종료. 이대로 끝내기엔 하루가 너무 아쉽다. 동료들과 한잔하며 신세한탄 좀 하고 집에 들어가 씻고 눕는다. 잠이 오지 않아 한동안 스마트폰을 하다 나도 모르는 새 잠이 든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평일엔 바쁠 테니, 주말을 보자. 일이 바쁘면 출근하는 날도 많다. 출근하지 않는 날엔? 이 소중한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겠다는 각오로 약속을 여러 개 연달아 잡는다. 평일 동안 밀린 잠을 몰아서 자고 일어나자마자 점심식사 약속에 나간다. 음식점에 갔다가 커피숍을 가는 건 이제 필수코스다. 수다를 떨다 보니 어느새 다음 약속시간. 이번엔 문화생활이다. 연극을 본 이후 또다시 먹고 마시고. ‘월요병’ 얘기를 끝으로 사람들과 헤어지고 집에 도착하면 이미 새벽. 바로 자야 하는데 또 잠이 안 온다. 내일 끝내야 할 일에 대한 걱정과 아이디어들이 머릿속에 뒤섞여 넘쳐난다. 오늘도 일찍 자긴 글렀다.



참을 수 없는 여유


일하는 시간 외에는 최선을 다해 쉬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또 다른 활동이었다. 사람들을 만나서 먹고 마시고 연극 보고……. 일주일 내내 ‘쉼’이 없다. 반드시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쉼’이라고 부르진 않겠지만, 적어도 피로한 몸을 회복할 수 있거나 더 피로하게는 하지 말아야 한다. 근데 항상 바쁘고 뭔가에 쫓기듯 생활했다. 한마디로 ‘여유’가 없었달까.


    사실 난 여유로운 시간을 참을 수 없다. 해야 할 일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다. 그런데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니, 어떻게 여유를 부릴 수 있나! 시간의 효용성을 높이려면 정해진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은 일들을 이뤄야 했다. 어쩌다 시간이 비면 새로운 약속으로 채웠다. 그러니 아무것도 안 하고 멍하게 있거나 약속시간에 일찍 나가서 사람들을 기다리는 시간, 버스 안에서 창밖만 바라보는 시간은 아깝게 느껴진다. 많은 자기 계발서에서도 출퇴근하는 이동시간, 점심식사 후 쉬는 시간처럼 ‘조각난 시간’을 잘 활용해야 성공한다고 숱하게 말하지 않나. 영어단어를 외우든 한자 시험문제를 풀든, 스펙을 높일 수 있는 무언가를 하라고. 그래서 항상 뭔가를 하느라 애썼고, 한동안 정신없이 살았다.



    항상 빠듯한 일정 때문에 몸은 계속 긴장하고 마음을 놓을 새가 없다. 다음 일정이 있으니 지금 하는 일이 조금이라도 늦으면 이후 약속들도 모조리 시간을 못 지킨다. 그러니 정시에 끝내야 한다는 압박이 일을 시작할 때부터 심하다. 다음 약속을 계속 떠올리다 보면 생각만 많아져 지금 하는 일에 집중하기도 어렵다. 시간을 보람 있게 쓰는 수준이 겨우 활동의 양만 늘리다 질을 잃고 만 정도인 건가.


    분단위로 빽빽이 일정을 잡으니 약속은 번번이 늦을 수밖에 없는데, 다음 약속 장소로 이동할 때 버스가 조금이라도 막히면 마음속에서 지옥을 몇 번씩 오가는지 모른다.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인데도 전전긍긍하며, 매번 모세가 바다를 가르듯 만나는 신호등마다 초록불이 되는 기적을 바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때도 버스를 타고 있었고, 모처럼 다음 약속까지 시간이 남았다. 문득 대각선 앞에 놓인 휠체어석이 눈에 들어왔다. 항상 비어있는 좌석. 이제까지 한 번도 누군가 앉아있는 걸 본 적이 없다. 왜지? 그러다 떠오른 무서운 생각. 내 조급한 마음이 버스에 올라타는데 시간이 많이 필요한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 어쩌면 나처럼 여유 없는 마음들이 모여 신체가 불편한 사람들이 편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못하게 만드는데 한몫한 건 아닐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여유는 성찰의 시간


쓸모가 없음을 알고 나서 비로소 쓸모 있는 것을 말할 수 있소. 저 땅은 턱없이 넓고 크지만 사람이 이용하여 걸을 때 소용되는 곳이란 발이 닿는 지면뿐이오. 그렇다고 발이 닿은 부분만 재어 놓고 그 둘레를 파내려가 황천(黃泉)에까지 이른다면 [과연] 사람들에게 그래도 쓸모가 있겠소? (…) 그러니까 쓸모없는 것이 실은 쓸모 있는 것임이 분명하지 않소! (안동림 역주, 『장자』, 현암사, 2019, 663쪽)


    시간을 가치 있게 쓴다고 몸과 마음이 쉴 수 있는 시간을 없애버리면, 양옆이 깎아지른 절벽인 위험천만한 길을 걷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시간을 쓸모 있게만 보내려다 결국 모든 시간을 위태롭게 만든 셈. 그러니 쓸모 있는 시간을 잘 보내기 위해서라도 쓸모없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주변이 낭떠러지인 길을 갈 때 사람들은 앞만 응시하고 가거나 바닥에 최대한 달라붙어가기 마련이다. 시야는 오로지 정면 혹은 바닥에만 고정이니 주변을 둘러볼 수도 없다. 내가 어디에 서있는지조차 제대로 볼 수 없고 단지 빨리 끝나기만을 바라는 길에서 뭘 얻을 수 있을까. 이런 인생의 길을 걷는 신체가 언제쯤 긴장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 길옆이 벼랑이 아닌 너른 들판이라면? 이런 길에서는 긴장할 필요가 없다. 걷는 속도를 자유자재로 조절하면서 주변을 둘러볼 수 있다. 가끔은 멈춰 서서 자연의 내음을 맡기도 하고 새소리에 귀 기울일 수도 있다. 가는 길을 충분히 즐기면서도, 확 트인 시야로 내가 어디쯤 서 있고 어떤 길을 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오던 길을 돌아보고 갈 길을 내다보기도 하면서.


    하루를 잘 보내려면 ‘성찰의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 시간은 나와 내가 서있는 시공간을 탐구하면서, 내게도 이롭고 남에게도 이로운 길을 찾는 시간이다. 버스에서 휠체어석을 바라보다 문득 떠오른 생각이 시간을 쓰는 방식을 돌아보게 만든 것처럼 말이다. 수시로 삶을 성찰해야 내가 잘 가고 있는지, 혹여나 빨리 가는 것만 신경 쓰다가 엉뚱한 방향으로 걷고 있는 건 아닌지 점검해볼 수 있다. 몸이 충분히 쉬고 있을 때, 마음이 모처럼 침묵하고 있을 때만 만날 수 있는 귀한 시간이다.


    멍하게 있는 시간은 마음이 침묵하는 시간, 약속시간에 일찍 나가서 사람들을 기다리는 시간은 지각할 때의 긴장감과 마음의 부담이 없는 편안한 시간, 버스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는 시간은 하던 일에 머물러 있는 마음을 지나가는 풍광에 잠시 맡길 수 있는 시간이다. 이렇게 뭔가를 비워내는 시간이 있어야 뭔가를 채우는 시간도 부담 없이 만날 수 있다. 시간을 효과적으로 쓴다는 건 무작정 일을 벌여 채우기만 하지 않고, 채움과 비움을 조화롭게 운용한다는 의미다.



면역력 관리는 발산과 수렴으로


인체의 양기(陽氣)는 하루 낮에 체표를 주관함에, 날이 밝을 때 양기가 처음 생겨나서 정오에는 양기가 가장 왕성해졌다가 해가 떨어질 때에는 양기도 쇠퇴하여 기문(氣門) 또한 그에 따라 막힌다. 그러므로 저물면 휴식을 취하여 양기를 거두어 사기(邪氣)를 막아야 하며, 근골을 움직이지 말고 안개와 이슬을 맞지 말아야 한다. 이 세 시기의 동정(動靜) 규율을 위반하면 병이 생겨 형체가 초췌해진다. (허준, 『동의보감』, 동의문헌연구실 옮김, 법인문화사, 2017, 233쪽)

     

    채움과 비움은 몸에도 있다. 『동의보감』에서는 “몸의 외부”를 지키는 기를 일컬어 ‘양기’라고 하는데, “외부를 지킨다는 것은 일종의 면역작용”을 말한다(안도균, 『양생과 치유의 인문의학 동의보감』, 84쪽). 몸의 외부를 돌면서 우리의 면역력을 책임지는 양기도 하루의 리듬을 지니고 있다. 낮에는 왕성해졌다가 밤에는 쇠퇴해지는 양기의 주기에 맞춰, 우리도 낮에는 활동하면서 기를 발산하고 밤에는 휴식을 취하며 기를 수렴해야 한다.



    이 자연의 리듬을 무시하고 밤에도 여전히 일한다면, 땀구멍으로 사기가 들어와 몸의 면역력이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제 병이 생기는 건 시간문제다. 병에 걸렸을 때 ‘면역 기능이 떨어졌다’는 말을 가장 많이 듣는데, 너무 광범위한 말이라 건강을 되찾으려면 뭐부터 해야 할지 막막하다. 그럴 때는 내가 하루의 발산과 수렴의 원리를 잘 지키고 있는지 살펴보고, 일상의 리듬을 회복하는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잘 살펴보면 채움과 비움, 발산과 수렴의 리듬은 어느 곳에나 적용된다. 일 년에는 사계절이 있고 일생에는 생로병사가 있다. 관계에서도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고, 생각이나 감정에도 기복이 있다. 도처에 존재하는 리듬에 잘 올라타서 내 삶을 운용하는 것, 어쩌면 그게 ‘잘 산다는 것’이 의미하는 전부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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